오피니언 사설

공공기관장 인사파행 도를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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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장 인사의 난맥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공기관장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한다며 일괄사표를 받았으나 정작 후임자를 정하지 못해 업무 공백이 장기화하는 등 파행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력·한국석유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는 적임자가 없다며 이미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고, 한국가스공사·한국수출보험공사 등도 후임자를 정하지 못했다. 금융 공기업 중에도 주택금융공사는 재공모까지 거쳤으나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헤드헌터사에 후보 추천을 의뢰했고, 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한국투자공사·수출입은행 등도 새로운 기관장을 선임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 공공기관에서는 공모와 재공모가 거듭되면서 수개월째 수장이 공석인 채 대행체제로 운영되는가 하면, 이미 사표를 낸 전임자가 계속 근무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 바람에 해당 기관의 주요 경영 현안들이 표류하고, 조직 개편과 인사가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새 경영진을 뽑지도 못할 바에야 무엇 때문에 멀쩡하게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을 몽땅 잘랐는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장 인사가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공모절차에 대한 의혹과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공모를 진행한다거나, 후보 가운데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없어 재공모를 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다 18대 총선에서 낙마한 낙천·낙선 인사들이 공공기관장 인사의 후보로 슬그머니 거명되고 있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낙하산 인사, 나눠먹기 인사, 코드 인사의 구태가 재연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내각과 청와대 수석 인사에서 적지않은 흠집을 남겼다. 그런데 공기업과 공공기관장 인사마저 무원칙한 파행으로 흐를 경우 이 정부에 대한 신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장 인사의 실패는 앞으로 추진해야 할 본격적인 공기업 개혁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한 인사를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