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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걱정 먹거리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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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알고 보니 금요일에 우리가 학교에서 나눠준 옥수수죽 한 그릇 이후론 먹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옥수수죽 한 그릇에 무슨 영양이 있겠나. 하지만 그게 아이들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얼마 전 짐바브웨에서 식량 지원사업을 벌이고 돌아온 한비야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의 증언이다. 짐바브웨 어린이 12만5000명이 이 단체의 무료 급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처지다. 그러나 이들의 실낱같은 생명줄마저 언제 끊어질지 위태롭기만 하다.

전 세계적인 곡물가·유가 상승으로 국제 구호단체들의 식량지원 사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구호 식량 외엔 기댈 데가 없는 극빈층으로선 생사가 달린 위기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8억60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린단다. 5초마다 어린이 한 명이 배를 곯다 죽는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북한에서도 최악의 아사 사태가 점쳐지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엔 상반된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먹거리 유무를 걱정하는 세계와 먹거리 안전을 고민하는 세계다. 살모넬라 감염 토마토 때문에 공포에 휩싸인 미국, ‘농약 만두’ 파동 이후 중국산 식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일본은 후자 쪽이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식탁에 오를까 전전긍긍하는 한국도 후자에 속한다. 물론 먹거리 안전 문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당장 다음 끼니를 먹게 될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배부른 고민’으로 비칠지 모른다. 어차피 굶어 죽느니 뭐든 원없이 먹고나 죽었으면 좋겠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평평하지가 않다. 지구 한쪽에선 자동차 연료통을 채우는 일에 골몰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배를 채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저쪽 세계에선 무슨 수를 쓰든 해충·기후변화에 강한 종자를 개발해 식량을 많이 확보하는 게 발등의 불인데, 이쪽 세계에선 유전자조작식품(GMO)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 이편에선 몸에 좋은 유기농만 골라 가능한 한 적게 먹자는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이 한창인데 저편에선 몸에 안 좋은 패스트푸드조차 없어서 못 먹는 형편이다.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간극을 줄일 방도는 무얼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전 유엔식량특별조사관)는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이란 미국 작가 수전 손태그의 말도 궤를 같이한다. 요컨대 이쪽 세계 사람들이 저쪽을 돕는 손길을 뻗는 것만이 해법이란 얘기다.

지금까진 움직임이 재지 못했다. 이미 1996년 선진국들이 모여 유엔세계식량회의를 열고 2015년까지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이들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엄숙히 다짐했었다. 그러나 빈국들의 식량 증산을 위한 자금 지원규모는 이후 현저히 감소했고, 기아는 더욱 확산됐다. 이달 초 다시금 열린 유엔세계식량회의. 180여 참가국들은 10여 년 전 약속을 되풀이했다. 2015년까지 굶는 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이를 위해 우선 65억 달러를 십시일반으로 내놓겠다고. 상황이 훨씬 더 다급한 지금, 재탕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당장 오늘 아사자를 막기 위한 식량 배급에 급전이 수혈돼야 한다. 내일의 먹거리를 기약하기 위해 씨앗과 비료, 농업기술 지원도 이어져야 한다.

저쪽 세계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느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 식탁의 안전을 위해 수천, 수만의 촛불이 켜졌었다. 그중 단 1%만이라도 저들의 먹거리를 염려하는 불빛이었다면 좋겠다.

신예리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