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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 이는 문고판 바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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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호주머니의 정보 보고(寶庫)「문고판」.깊은 수렁에 빠진 문고판 발행이 올해는 활기를 띨까.
6년만에 처음으로 신간도서 발행량이 감소하는 등 출판계에 몰아닥친 한파가 매서운 가운데 병자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시도의문고판이 잇따라 관심을 모은다.
또 이미 문고를 펴냈던 출판사들도 올 주력사업의 하나로 문고판 활성을 내세워 고사(枯死)위기에 놓인 문고판의 르네상스가 성사될지 주목거리다.올초 야심차게 출발한 문고판은 두가지.크리스찬아카데미 부설 한국사회교육원이 엮은 「시민을 위한 작은 책」(한울)과 도서출판 당대에서 선보인 「당대문고」로 『문고판을내면 출판사 경영이 어려움에 빠진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통용되는 한국 출판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시민을…」은 국가주도의 한국사회 운영을 앞으로는 민간인과 민간단체가 맡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시리즈.사회교육원이 주최하는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한 것으로 국내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우선 총론격인 『한국 시민사회의 이해』(최장집.이종오 공저)와 『지방화와 지구화,그리고 시민운동』(이시재.유재현)이 나왔다.월말에는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각국의 시민운동 현황을 조망한 책이 두 권 추가된다.
「당대문고」 1번타자로 나온 『저녁노을』은 옛 동독출신 작가슈페탄 헤름린이 자신의 출생과 성장 등 인생역정을 통해 30년대 독일을 회상한 자전소설.
내달초에는 참교육실천위원장 이진경씨의 산문집이 출간된다.이어타계한 민중시인 김남주씨와 역시 지난해 사망한 재독음악가 윤이상씨의 평전이 나온다.문예물을 중심으로 좌우이념 구분없이 지성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한길사도 올가을 출간을 목표로 방대한 규모의 전기물을 준비하고 있다.
동서고금 위인들의 사상과 업적을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되짚은 독일의 저명한 인물평전 「로로로」시리즈에 한국의 역사를 빛냈던 사람들도 대거 포함시켜 본격적인 전기물의 개화를 노리고 있다. 기존문고의 활성화도 눈에 띈다.85년 겨울 「한국근대시선」으로 「교양문고」닻을 올렸던 창작과비평사는 서양 근대문학을철저하게 새로 번역하는 동시에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의 한국소설에 초점을 맞춰 연내 10여권을 간행할 예정.대원사의 「빛깔 있는 책」도 올해 안에 200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초 프랑스 갈리마르총서를 번역출간한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도 연말까지 50권을 채울 계획이다.
또 94년9월 재출발한 열화당 미술문고도 올해 40권 달성을내세우고 있다.
범우사도 최근 「범우문고」1차본 150권을 완간했다.
이러한 시도는 고급정보를 값싼 가격에 전달하면서 현재의 불황을 벗어나려는 출판사들의 암중모색으로 풀이된다.
문고판의 전성기는 70년대.을유문화사.문예출판사.서문당 등에서 활발히 출간해 한국사회의 교양폭을 넓힌 것으로 인정받았다.
반면 70년대는 중반부터 15여개 출판사가 앞다퉈 동참했으나 이미 출간된 고전의 재탕등 기획력 부족과 독자들의 무관심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특히 80년대 들어 단행본에 밀려 크게 위축됐고 90년대도 별다른 개선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문고판의 전망은 아직 어두운 편.국내 독자들의 독서열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며 채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서점.출판사.유통시장에서 냉대를 받기 때문이다.
출판전문가들은 『문고판도 애장용 도서로까지 자리잡기 위해서는디자인 혁신은 물론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기획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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