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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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근배(1940~) '노을' 전문

어디 계셔요
인공 때 집 떠나신 후
열한살 어린 제게
편지 한 장 주시고는
소식 끊긴 아버지

오랜 가뭄 끝에
붉은 강철 빠져나가는
서녘 하늘은
콩깍지동에 숨겨놓은
아버지의 깃발이어요

보내라시던 옷과 구두
챙겨드리지 못하고
왈칵 뒤바뀐 세상에서
오늘토록 저녁해만 바라고 서 있어요

너무 늦은 이 답장
하늘 끝에다 쓰면
아버지
받아 보시나요



소년은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아버지에게 답장을 쓴다. 주소도, 생사도 알 수 없으니 하늘 끝 빛나는 노을 언저리에 쓴다. 그러면 아버지의 영혼이 그 답장을 어디선가 읽을지도 모른다. 어디 계셔요? 어디 계셔요? 우리 모두 다시는 이런 아픈 가슴들 위에 상처를 덧내는 후레자식이 되지 말자.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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