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고마움 못잊을 택시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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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늘은 병원가는 날이다.
딸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언덕길을 내려와 동교동 로터리로 나오니 영업용 택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누워 있어도 참기어려운 내 허리는 찬공기에 빳빳하게 얼었다.30분이상 기다려서야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멎었다.
나는 기사아저씨의 목소리와 선량한 인상으로 다소 안심은 되었으나 그래도 오른손은 손잡이를,왼손은 앞의자의 등받이를 잔뜩 움켜 쥐었다.
『저는 척추뼈 수술 환자인데요,조심해서 운전해 주세요.』어떤운전기사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도록 차를 험악하게 몰기 때문이었다. 일원동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더 걱정이라는 내 말에 기사아저씨는 진료 끝나는대로 병원 건물 바로 앞에 있는 공중전화부스로 나오라고 했다.기다려준다고.
우리는 50분쯤 후에 병원을 나왔다.아까 타고 온 택시가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데 저만치 택시 승객들이 줄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오랫동안 앓아온 나는 심신이 위축되어서인지 이만한 친절에도 목이 메었다.
외마디 비명이나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서 동교동 로터리로 되돌아왔다.모처럼 마음을 턱 놓고 거리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다음 병원가는 날은 언제냐고 물으며 그분은 요금대로만 받고 사례비조로 드린 거스름돈을 내주었다.막무가내로 집에 와 생각하니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 들었다.불친절하고 제멋대로인택시기사만 봐오다가 손님 대접을 융숭하게 받고 그분의 따뜻한 배려에 몇푼의 돈으로 인사하려 했던 내 속물근성이 미웠다.그런대로 그분의 차 번호와 이름을 외우고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그 기사에 대한 고마움을 결코 잊을수 없을 것같다.
변해빙 서울서대문구창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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