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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물려줄 100년 펀드 내놓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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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28면

7월 초면 한국 펀드시장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일반 투자자도 은행·증권사의 펀드판매 창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운용사에서 펀드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같은 펀드 직판(直販)은 2년 전 도입됐지만, 그동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내놓은 운용사는 없었다.

국내 첫 ‘펀드 직판’ 나서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펀드 직판에 첫 도전장을 낸 장본인은 강방천(49)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이다. 그는 지난주 금융위원회로부터 자산운용사 설립 인가를 받은 뒤 “직판만을 하는 운용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는 지금 강 회장의 행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10년 전 뮤추얼펀드로 펀드 대중화의 바람을 일으킨 데 버금갈 정도의 지각변동을 예상하는 소리도 나온다.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의 에셋플러스 본사에 설치된 펀드 직판 창구.

 펀드를 직판하면 은행에 판매를 맡길 때보다 회사 비용이 5∼6배나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강 회장이 직판 출사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17일 서울 역삼동의 강남파이낸스센터 21층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직판 카드를 꺼낸 이유가 뭡니까.
 “한마디로 고객과의 ‘소통’ 때문입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 펀드 판매를 맡기면 운용사의 투자철학이며, 상품의 됨됨이, 그리고 시장의 변화 등을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어요. 펀드 판매사들은 운용사보다 훨씬 높은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고객 서비스는 주먹구구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펀드가 유명해질라치면 덩달아 권유하기 바쁘고, 수익이 좀 났다 싶으면 다른 펀드로 갈아타라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고객들에게 좋은 펀드를 ‘단기’로, 나쁜 펀드를 ‘장기’로 투자하게 만들기 일쑤입니다.”

 -전국에 은행 점포만 5000개가 넘는데, 이들의 도움 없이 투자자와 직접 소통한다는 게 무모하게 들립니다.
 “그런 측면이 있긴 합니다. 더구나 회사 운영비가 5배 이상 듭니다. 은행들도 우리의 시도가 곱지 않게 보였나 봅니다. 국내 대형 은행들은 직판 고객들을 위한 송금계좌 개설 제휴를 거부하더군요. 결국 외국계인 씨티은행·SC제일은행과 손을 잡게 됐지요. 고객들은 이들 은행에서 에셋플러스 계좌를 만든 뒤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펀드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삼동의 에셋플러스 본사를 찾으면 직접 펀드 매입이 가능하다. 기자가 찾은 그곳은 웬만한 프라이빗뱅킹(PB)센터 못지않게 품격 있는 상담·판매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

 -구체적으로 고객들과 어떻게 소통하겠다는 겁니까.
 “오늘 같은 날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어요 (※이날은 중국 증시가 7% 폭락한 검은 화요일이었다. 그는 주가 차트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런데 펀드 매니저들은 고객과 소통할 길이 없어요. 우리 같은 직판 시스템에선 직접 e-메일로 시장 상황을 짚어줄 수 있어요. 현재 펀드시장 고객들의 정보는 판매사들이 갖고 있고 운용사들은 고객이 누군지 몰라요. 하지만 직판이 되면 우리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갖게 되고, 이를 활용해 맞춤형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그는 재미있는 구상도 소개했다. 투자자들과 정기적으로 직접 만나 교감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9월 서울 양재동에 ‘투자 지혜의 전당’을 오픈할 계획이라고 했다. 회사의 투자 판단과 전략을 소개하고 고객들의 의견도 직접 듣는 공간이다. 더 나아가 몇 년 후부턴 워런 버핏이 미국 중부의 소도시 오마하에서 매년 5월에 여는 주주총회처럼 모든 고객을 초대하는 오프라인 축제도 펼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해안이건 강원도건 드넓은 자연에서 투자자들과 부를 나누는 축제를 열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가입해 자식·손자들에게 물려줄수 있는 100년 가는 좋은 펀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투자자를 부자 역으로 이끌 ‘열차표’는 뭡니까.
 “7월 7일께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아 3개 펀드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함께 부자가 되자는 의미로 ‘리치 투게더’란 이름이 붙은 3개 펀드는 각각 글로벌·한국·중국 시장에 투자합니다.”

 -세계 각국의 증시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타이밍이 나쁜 건 아닌가요.
 “지금 글로벌 증시는 변화의 진통를 겪고 있습니다. 고유가와 미 주택 버블의 붕괴, 중국의 긴축 등이 그것이죠. 변화는 두려움과 불안을 잉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식은 그 악몽을 축제로 돌릴 수 있는 통로입니다. 물론 화두는 ‘가치 있는 주식’이지요. 떨어지는 주가만 보지 말고 큰 변화의 흐름을 읽어 낸다면 이는 곧 엄청난 기회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저 원론적인 얘기로 들리는데요.
 “구체적으로 봅시다. 지금 중국과 인도·러시아·중동 같은 신흥국에서 30억 명의 새 부자 군단이 잉태되고 있어요. 이들은 과거 선진국들보다 5배 빠른 속도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갑을 먹고 크는 투자에 눈을 떠야 할 때지요. 주가는 가치에서 잉태됩니다. 가치는 이익에서 나오죠. 이익은 매출에 바탕을 깔고 있습니다. 매출은 소비가 근간이고요. 소비는 투자자들의 지갑에서 파생됩니다. 결국 ‘지갑을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세계의 부자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를 ‘하이엔드 산업’이라고 정의합니다. 벤츠 같은 기업이 여기에 속합니다. 차를 소비할 때 마지막에 도달하는 최고급 상품의 하나가 벤츠 아닙니까. 이런 하이엔드 산업은 소득이 증가할수록 더 빠르게 수요가 늘고, 이런 고객들이 누적적으로 쌓이며, 불황기에도 매출 변동이 작은 특징을 갖습니다. 지속적인 성장과 수익이 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펀드에 어떤 주식들을 넣을지 좀 더 자세해 설명해 주시죠.
 “세계의 부자, 특히 신흥국 부자들에게 고급 자동차·요트·보석·예술품 등을 파는 기업에 투자하면 큰 과실을 딸 수 있다고 봅니다. 조사해 보니 세계적으로 하이엔드 쪽에 23개 산업이 있어요. 140개 기업이 각국 증시에 상장됐는데, 여기서 12개국의 40개 주식에 투자할 겁니다.”

 -‘차이나 리치 투게더 펀드’의 투자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보통 중국 하면 많은 이들이 ‘성장성’을 얘기해요. 그러나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통화 절상’입니다. 앞으로 중국인을 부자로 만들 가장 중요한 매개체죠. 5년 내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를 반영해 통화가치가 크게 올라갈 겁니다. 새롭고 거대한 중국의 부자들이 나온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지요. 이들은 엄청난 기업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이어질 수 있는 인프라도 이미 구축되고 있습니다. ”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같은 펀드와 뭐가 다릅니까.
 “주식을 도구 삼아 성장 과실을 향유하자는 것, 1등 기업과 같이 간다는 점은 비슷해요. 그러나 ‘경제성장=주주이익’이란 항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관점입니다. 여기서 미래에셋의 투자전략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같은 ‘청년기 시장’은 비이성적 과열과 공포에 휘말리면서 주가가 급등락하기 쉽습니다. 아울러 고도성장 과정에서의 고금리 때문에 기업의 이익이 주주에게 집중되지 않고 채권자 등에게 분산되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장성 좋은 주식을 사서 장기 보유하는 바이 앤드 홀드(Buy & Hold) 전략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때로는 변동성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사고파는 전략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세상 변화를 읽는 키워드는 어디서 낚아챕니까.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게 지금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전남 신안군 암태도가 고향입니다. 바깥 세상이 늘 궁금했어요. 학교 도서실에 책이라고는 흘러간 고전 몇 권이 전부였지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시간이 나면 동네 약방의 라디오 앞에 앉아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게 취미가 됐었죠. 그리고 지도책을 벗삼아 나름대로 바깥 세계를 상상해 봤죠. 이렇게 쌓인 상상력과 논리력 훈련이 지금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는 남들이 간과할 때 ‘주식의 숨은 가치’를 캐내는 비결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껌이 중국에서 인기라는 뉴스에 포장지를 만드는 은박지 제조업체의 주식을 떠올리고, 음주운전 단속 소식에 보험사 이익이 늘 것이라고 생각하는 밑천은 치미는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강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 전셋돈 1억원을 증권주에 투자해 153억원으로 불리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운(運)이 좋은 것 아니냐’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해마다 30% 넘는 고수익을 거뒀다. 앞서 쌍용투자증권에서 일할 때는 회사 주식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로 회사에 수백억원을 벌어줬다. 1994년 증권사를 떠나 독립한 뒤 증시 침체로 고생했던 그는 외환위기를 기회로 삼아 인생역전에 성공했고, 99년 에셋플러스투자자문을 차려 ‘가치투자’ 전도사로 활약해 왔다.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앞으로 제2의 박현주가 나온다면 강방천이 가장 근접한 인물일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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