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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나에게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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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카무라 요시후미씨의 자택은 그의 철학과 아이디어가 곳곳에 반영돼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빈 공간에 서가와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를 만들었다. 집안에 자유스럽게 몽상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집을 생각한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다빈치, 152쪽, 1만5000원

누구나 자신이 살고 싶은 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조그만 정원에 빛이 많이 들어오는 아담한 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어린 시절 한옥에 살았던 사람은 여름철 낮잠을 자던 서늘한 툇마루의 추억을 그리워할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많은 깨우침을 준다. 30년간 주택설계를 전문적으로 해왔던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포근한 집’이다. 집안 구석구석 만질만질한 촉감을 통해 가족들이 하나가 되는 곳, 빛과 조명이 조화돼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는 것이다.

서문엔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한 대목이 나온다. 17세까지 고아원에서 자란 주인공 주디가 친구 샐리의 집에 찾아갔을 때 느낀 인상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 곳은 아이를 키우기에 최고로 훌륭한 집이에요. 숨바꼭질하기에 딱 좋은 캄캄한 구석도 있고, 팝콘을 만들 수 있는 벽난로에다 지루하게 비가 오는 날 뛰어 놀기 좋은 다락방도 있어요. 게다가 계단에는 미끈하고 촉감 좋은 손잡이 난간도 있답니다.이런 집을 보면 누구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거예요.”

소설에 나오는 집에 대한 느낌은 저자가 집을 설계하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들이다. 가족들이 자주 만져 생긴 난간의 좋은 촉감은 대리석 바닥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방도 아름답고 세련된 것 보다 ‘어수선한’ 게 이상적이라고 주장한다. 냄비와 솥을 비롯한 조리도구가 밖으로 노출돼 있는 주방은 어수선해 보이지만 쉽게 요리를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설계사무실에 직접 만든 주방은 프라이팬 등을 벽에 죽 걸어 놓았다. 인간적이고 활기찬 느낌이 묻어난다.

가구를 고르는 요령도 귀담아 들을 만 하다. 저자는 설계사 초년병 시절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 조선시대 반닫이와 이태리의 가구 명장 지오 폰티의 의자를 구입할 정도로 가구 애호가다. 특히 조선시대 반닫이는 한눈에 반해 빚까지 내 사들였다고 한다. 그는 반대하는 아내에게 ‘가구를 공부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교재는 없다’며 설득했다. 이렇게 산 받닫이는 25년 넘게 그의 거실을 지키고 있다. 그는 가구를 고를 때 품격이 있으면서 기본적인 디자인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가구는 몇 세대를 물려가며 쓸 수 있으므로 유행을 타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거장 건축가들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연립주택, 찰스 무어의 콘도미니엄 ‘시 랜치’, 필립 존슨의 원룸 주택인 ‘글라스 하우스’ 등 건축학도들에겐 교과서가 된 작품들이 등장한다. 모두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절제미를 강조한 명작들이다. 사진과 삽화까지 곁들여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선 집이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사람들은 살기 편한 집보다 앞으로 값이 뛸 집을 선호한다. 건설회사도 입지와 브랜드를 강조한다. 사람을 위해 집이 있는 것인지, 집에 사람을 맞추는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집은 단지 물리적으로 생활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편안하고 풍족한 마음이 오래 지속돼야 하는 장소가 제가 생각하는 집의 참모습입니다.” 더 나은 집을 찾기 위해 지금도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진정한 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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