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新인간>13.뉴욕 OK해리스화랑 전속화가조숙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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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왜 미술쪽에선 음악의 정경화(鄭京和)나 사라 장 같은 세계적인물이 나오지 못하는 걸까.이 물음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젊은한국 화가들의 도전 열기는 결코 음악쪽에 뒤지지 않는다.
뉴욕 화단에서 활약중인 조숙진(趙숙進.35)씨.
그녀는 아직도 화실의 월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예술가다.그렇다고 세계적 유명 화가들 사이에서 특별히 이름이 나 있는 처지도 아니다.맨해튼의 허름한 화실 속에서 줄기차게 자신의 작품활동에 전념할 뿐이다.
그러나 황량하기 그지없는 뉴욕 바닥에서 작품활동에만 전념하며작품을 선보일 전시공간을 보장받고 있다는 점에서 趙씨는 뉴욕 화단에 진출한 한국 화가중 행운아에 속한다.
그녀는 지난 88년 미국에 건너와 90년부터 세계적 유명 화랑인 오케이 해리스의 전속화가가 됐다.
화랑측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개인전시회를 마련해주고,그것이 계기가 돼 권위있는 미술 전문지의 작품 평론까지 받았다.뉴욕 화단에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재미 한국미술가들이 한결같이 원하는지름길 코스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서울에서 했던 작품들의 슬라이드사진을 들고 오케이 해리스를 찾아 갔지요.화랑 주인이 슬라이드를 훑어보더니 대뜸 작품을 보자고 해 저 자신도 어리둥절했습니다.』 오케이 해리스 화랑의 주인 아이반 카프는 세계적 대화상(大畵商).그는 화랑사업으로도 유명하지만 젊은 화가들을 발탁해키워온 뉴욕 화단의 터줏대감이다.
『당신 작품은 잘 팔리기 어려울 거요.그러나 내가 보기에 좋은 작품이기에 당신을 택하기로 결정했소.』 이렇게 해 趙씨는 오케이 해리스 화랑에서 네차례나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엔 2월에열릴 다섯번째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녀는 원래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다.인하대 가정교육학과를 나왔다.부모의 반대로 미술대 진학을 포기했으나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살겠기에 대학원(홍익대미대)에 들어가 미술을 전공한 드문 케이스다.
『대학 3학년말에 결심하고 미술대학 편입학을 알아 봤으나 미술전공 학생이 아니라 불가능했습니다.하지만 대학원에선 받아 주더라고요.』 미술대학을 안 나왔으니 특별한 줄이나 배경이 있을리 없다.趙씨는 그러나 별로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정규 교육과정을 안 거쳤다는 것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도리어 보다 자유롭게하고 있는 요인일지 모른다.
***아르바이트로 생활 유지 구상에서 추상으로,캔버스에서 합판 쪼가리로 옮겨간 것도 누구의 조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결정한 것이었다.
趙씨의 작품 소재는 「버려진 것」들이다.길가나 쓰레기더미 속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재구성해 작품화하는 것이 요즘 작업들이다.이런 예술가에게 뉴욕처럼 안성맞춤인 곳은 또 없다.
최근 완성한 『천국으로 향하는 창문은 열려 있다』는 작품도 브루클린 강가 쓰레기더미에서 주워온 5개의 나무 창틀과 2개의찌그러진 의자로 만든 것이다.
저명한 미술평론가 도널드 커스핏은 『조숙진은 버려진 것들을 모아 성스러운 예술을 창조해 낸다』면서 『숨겨진 샘물이 있기에황량한 사막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녀의 작품세계』라고 치켜세웠다.
미술전문잡지 「아트 인 아메리카」도 평론을 통해 그녀의 뉴욕화단 데뷔에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趙씨의 현 좌표는 「성공한 화가」라기보다 미래에 도전하는 「미완의 대기(大器)」라고 해야 맞다.
화랑 주인 카프의 예언이 들어맞기나 하듯 趙씨의 그림은 결코잘 팔리지 않는다.지금까지 그녀의 작품은 플로리다의 현대화 수집가등 불과 몇 사람에게 팔렸을 뿐이다.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의 난해성도 걸림돌이겠으나 작가 자신이 상업성과 전혀타협할 생각이 없다.
趙씨는 미술학도들을 짬짬이 가르치는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다.35세의 나이에 여태 결혼을 안한 것은 유별난 독신주의자여서가 아니다.좋아하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 보니 결혼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극장디자인 분야도 욕심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캔버스 대신 합판 쪼가리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직접적 동기는 경제적인이유 때문이었습니다.캔버스 한장 살 돈이면 같은 크기의 합판을10개나 살 수 있었으니까요.어쨌든 합판을 마음대로 자르고 때로는 부수며, 구멍도 뚫어보고 하면서 합판에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됐지요.』 뉴욕에 온 이후 작품성향은 한층 대담해져 가고 있는 편이다.회화적 요소보다 조각적 요소를 더 강조한다.조각이냐,그림이냐의 구분이 중요한게 아니다.무엇이든 생각을 표현하는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뉴욕 생활에 익숙해지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도 받고 있다.그중 관심있는 것은 극장 디자인분야다.뉴욕 「실험극」공연극장은 극장이나 무대장치 자체가 상당한 예술성을 띤 경우가 많다.趙씨는 이 분야의 공동작업 제의에 강한 흥미를느끼고 있다.趙씨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연간 평균 20점 내외.
작품활동에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시회 준비를 하다 보면 금세 한해가 지나간다.남들이 흔히 들먹이는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도 별로 실감하지 못한다.
『어떤 작품이든 독창성이 결여돼서는 뉴욕 화단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백인중심 사회에서 백인들이 하는대로 따라가서야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따라서 한국인 화가라고 해 유독 핸디캡이 될 수 없 지요.』 “당신 作品 안팔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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