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중소기업 사장을 걱정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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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초 사흘 연휴 마지막날 같은 동네에 사는 중소기업 사장 몇분과 한시간쯤 같이 이야기하며 보냈다.걱정이 태산같은 사람,정부에 대해 노기등등(怒氣騰騰)한 사람,의기소침(意氣銷沈)한 사람,아직은 부도를 안내고 견디고 있음에 스스로 대 견해 오히려한숨 짓는 사람,여러 부류였다.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얼마전 미국 앨라배마주에 다녀왔는데 그곳 숙련공의 평균 시간급이 6달러라고 합디다.
미국 노동자의 1년 노동시간은 정확하게 2,080시간입니다.
연봉으로 치면 1만2,480달러지요.
이것 밖에는 다른 지급이 일절 없습니다.저희공장에서는 같은 급의 사람에게 한달에 120만원 월급을 주고 있습니다.보너스.
퇴직금.보험료.기타 복리후생비 지급을 계산하면 연간 총지급액이2,200만원에 이릅니다.우리 공장 근로자들의 일하는 시간은 시간외 근무를 포함해 미국 시급 노동자에 비해 연간 20%정도많습니다 마는 능률을 감안하면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힘도 센 그쪽 사람들과 대체로 같은 분량의 일을 한다는 계산입니다.그런데받는 것은 두배반이 넘습니다.원 초적으로 손을 들 수밖에 없게돼갑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경쟁을견뎌올 수 있었던 것은 기업가 레벨에서 우리쪽이 미국 기업가들보다 전략적으로 우수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마 시설투자에서 과감하게 새로운 생산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그랬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같은 세계 단일시장 속에서 이런임금 격차를 감당하고 계속 살아남을 수는 없다.큰일났다.미국보다 비싼 것이 어디 임금뿐인가.노임이 미국보다 비싸진 것은 최근 일이겠으나 금리.땅값.준조세.물류비가 미 국보다 두배에서 몇배씩이나 더 비싼 것은 오래전부터다.
다른 사장이 말했다.
『신문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같은데, 요 몇달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인력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남아돌고 있습니다.우리 회사에는 일감이 줄어들어 놀리면서 월급을 주는 사람도 있고,전에는 우리보다 더 작은 기업에 하청주던 것을 되돌 려 와서 훨씬 비싸게 먹히지만 고급인력에게 싼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다만법 때문에 해고를 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인력이 남아 돌면 해고를 시킬 수 있어야 아직도 인력이 모자라는 곳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그래야 두 군데 를 다 살릴 수 있습니다.저는 제조업에는 셔터를 내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을 외국에서 수입해 파는 쪽으로 업종을 바꿀까 합니다.한 30년 이 업종을 했으니 판매에는 자신이 좀 있어서요.시장에서 미국제 수입양말이 국산보다 싸던데요.
올데까지 온 거죠,뭐.』 중소기업을 하는 친구 하나가 『시장이나 같은 또래 중소기업한테 제품을 팔면 돈을 못받고,대기업한테 팔면 값을 못받고.이래 저래 중소기업은 죽게 돼 있는 게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이 말을 그 자리에서 전했더니 기계부품을 만드는 다른 사장이 말했다.
『저는 시장 상대로는 지난해부터 일절 물건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대기업에만 팝니다.이런 식으로 조심 조심하니까 버텨내고 있습니다.올해는 대기업 가운데도 값만이 아니라 돈마저 못 받는곳이 나올 것같아서 걱정입니다.』 같은 날 오후 역시 중소기업사장인 처제가 전화를 했다.『형부,이건 억지로 노는 것이지 즐거운 휴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요.남들이 다 노니까 우리 공장도 놀기는 노는데,자 어디 가려니 길은 막히지 숙소는 예약 못하지….』 아마 사업이 어려우니까 트집잡고 싶은 것이 자꾸 마음에 생기는 것이리라.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은 풀이 죽어 있지 않으면 엄청 화가 나있다.올해 신수에서 누구나,특히 정치가.관리(대기업의 관료적 경리.구매담당 포함),은행원.노동조합 간부가 극력 피할 일은 이런 중소기업 사장과 외나무 다리위에서 맞부닥뜨리는 것이 아닐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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