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대머리 원숭이" 그랑빌 지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햇볕이 따뜻한 베란다에서 네살짜리 조카가 물고기들에게 먹이를주고있다.
필자:민규야,붕어 배 터진다.이제 그만 줘라.
조카:(붕어를 내려다보며 묻는다)붕어야.너 더 먹고 싶은 거아니니? 필자:(궁금해져서)뭐라 그러니? 조카:(끄덕끄덕)「응,그래.좀더 맛보고 싶어」그랬어.
아이는 통역자라도 된듯 아주 진지하게 끄덕인다.
얘야,네겐 집이 하나 더 있구나.
집짐승.들짐승.곤충들이 물고기와 함께 놀고 밥을 달라 조르고산들이 손뼉치고 나무들이 춤을 추는 그런 세계.그 세계에서 아이들은 닫히지 않는 상상과 진지함의 힘으로 그것들과 놀고 배우며 소통한다.그래서 그 문을 닫고 현실과 이성의 비좁은 단칸집을 얻어사는 우리같은 어른들은 「인터네트에 들어간 대머리원숭이」같은 우화적.동물적 상상력이 새삼 놀라운 것인지.
「나는 허영심 때문에 내가 어떤 새인지를 잊어버렸어」라고 상사병에 걸려 방황하면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묻는(자칭 철학가)펭귄,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아 지난 삶의 풍랑을 손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산토끼,성공한 예술가를 꿈꾸며 초상화를 배우지만 재능부족으로 사진사가 된 대머리원숭이,첫사랑이 결혼했다는 소식을듣고 가슴이 메어 죽어버린 산비둘기 등등.
나는 때로 실소(失笑)한다.우스꽝스런 허영심과 헛된 꿈의 소유자,옹색한 자부심을 놓지 못하는 자,자신 앞의 생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쓸데없이 고뇌하는-그들이 누군가.발을 뺄것도 없이 바로 우리들 초상화이어서-나는 알겠다는듯 쑥스럽게 웃으며 우리들 우화적인 삶의 조건,삶의 풍광을 읽어간다.
「우리집은 아주 모범적인 가정이었다.내가 한동안 차지하고 있다가 부숴버린 세계인 알껍질을 놓고 보니 내가 끝없는 우주의 하잘것 없는 주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나는 곧 내 운명을 깨달았단다.」「철학한다고 잘난 척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다만 삶에 익숙하지 않지만 어쩔 수없이 살아야 할 때는 삶의 규칙들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원제가 『동물들의공생활과 사생활』인 이 책은 단순히 현실과 세태의 묘사와 풍자를 넘어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냉소적으로,때로 서정적(그렇다.서정적!)으로 소박하게 묻고 있다.
나는 말을 붙여본다.
펭귄아,펭귄아.네 철학은 무어냐.
철학하는 펭귄이 긴긴 방황 끝에 우리를 위로한다.
오랜 세월의 수고와 슬픔속에서 짧은 행복의 순간들을 얻는 것.그때 상상이,진지함이,내 안에 집이 한 채 더 생겨난다.나는어린아이같이 생의 저 소박한 진리를 말해주는 짐승을 친구로,스승으로 삼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소설가) 강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