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여차저차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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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내가 여차여차해서 왔다니까 그 여자가 나를 술독 있는 데로 데려가더라고요.” “여차여차한 일이 생겨 오늘 못 간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문에 쓰인 ‘여차여차(如此如此)하다’는 ‘이러이러하다’란 뜻으로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사전에 실려 있다. 그럼 ‘이러하고 저러하다’란 뜻의 한자어는? 없다. 우리말은 ‘이러저러하다’이다.

다음 예문을 보자.

“상황이 달라졌으면 국민들에게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됐다’고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16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아바나에 숨겨진 아스텍 황금을 탈취하려 했다… 여차저차해서 황금 탈취는 실패하고….”

‘여차저차하다’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말을 버릴 것인가. 우리말에는 ‘이러저러하다’ ‘이러쿵저러쿵하다’ ‘이제저제하다’ ‘이모저모’ ‘이판저판’ ‘여기저기’ ‘이래저래’ ‘이런저런’ ‘이편저편’ 등이 있다.

우리말이 조어력(造語力)에서 한자어에 밀리는 건 사실이나 한자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비록 사전에 나오지는 않지만 ‘여차저차하다’(또는 ‘이차저차하다’)는 그대로 ‘이러저러하다’는 뜻의 우리말로 써도 좋을 말이라 생각한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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