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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멈추고 화물선은 빈 배로 떠나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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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2일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화물연대 파업 관련 화주 대책회의’에 참석한 정종환(오른쪽에서 세번째) 국토해양부 장관이 회의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충남 아산에 있는 ㈜성영루디스의 이기수 상무는 10일부터 사흘째 평택항 입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형 냉동·냉장고를 만드는 이 회사는 9일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중국서 부품을 가득 싣고 들어온 컨테이너 9개가 평택항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 상무는 이날 오전 화물연대 서남부지회 집행부를 찾아가 “회사가 부도나면 책임질 거냐”며 따지기도 하고 “우리 회사 종업원들 밥줄이 끊긴다”며 사정도 했지만 화물연대 측은 요지부동이다. 화를 삭이지 못한 이 상무는 경기지방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우리 회사 차 7대를 가져왔는데 이 차의 출입마저 막는 것은 불법 아니냐. 공권력이 화물연대의 눈치를 살피는 사이에 기업은 도산 위험에 처했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운송업체도 찾아갔다. 그는 “운송업체가 수수료를 너무 많이 챙기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 운송비를 현실에 맞게 올려 줘라”며 목청을 높였지만 뾰족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 상무는 “우리 회사의 제품 특성상 6~8월이 가장 성수기다. 이때 장사를 못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영루디스는 월 1200대의 대형 냉동·냉장고를 전국에 공급해 왔다. 성수기에는 월 3000여 대를 판매한다. 그는 납기일을 못 맞추게 되자 전국 80개 판매대리점에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화주(貨主)뿐 아니라 해상운송사업자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장금상선은 일주일에 일곱 차례 평택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실어나른다. 한 번 들어올 때마다 배에는 300여 개의 컨테이너가 실렸다. 그러나 화물연대 서남부지회가 집단 운송 거부에 들어간 9일부터는 50개를 싣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이 회사 김성택 소장은 “운송 거부 이전에 들어온 컨테이너만 조금씩 싣고 있다”며 “중국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와 부린 뒤 중국으로 다시 갈 때는 사실상 빈 배”라며 한숨지었다.

평택항에는 일주일에 20여 척의 컨테이너선이 들어온다. 평택항만청 권세웅 항만물류과장은 “화물연대의 전면 운송 거부가 시작되는 13일부터는 전국의 모든 항만에서 빈 컨테이너선이 생기고 해상운송업체의 경영난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협회는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하루 최대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의 수출입 물류 운송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003년 5월 2일 포항 철강공단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던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는 2주 만에 5억40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6500억원)의 피해를 냈었다.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12일 오후 2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무역협회를 찾아 화주업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했다. 정 장관은 운송료를 현실화해 줄 것을 당부했지만 화주들의 합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간담회를 지켜본 화물연대는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자 예정대로 13일부터 전면 운송 거부에 돌입하기로 했다.

◇물류 동맥경화 확산=화물연대 전남지부는 12일부터 운송 거부에 들어갔다.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의 물동량은 평소 대비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루 5100TEU(1 TEU는 약 6m짜리 컨테이너 한 개)가 들어오고 나갔지만, 이날 하루 동안 1500TEU 정도만 반·출입됐다. 하루 100TEU를 광양항과 부산항으로 반출하는 대우일렉트로닉스 광주공장은 이틀째 물품을 야적해 놓고 있다.

화물연대 포항지부는 11일 오전 6시부터 운송을 거부 중이다. 회원들은 포항철강공단 내 20번 도로입구의 1개 차로를 점거한 채 길게 차를 세워 놓고 있다. 포항 동국제강 관계자는 “수송물량을 최대한 소화하려 하고 있으나 12일 오후부터는 차량 확보가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화물연대본부 제주지부와 제주도 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협회는 이날 운송료를 15% 올리기로 합의했다.

글=김기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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