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퇴진 요구하는 국민대책회의의 오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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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됐던 촛불집회가 정권퇴진 투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그 중심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있다. 1700여 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국민대책회의는 “국민은 20일까지 정부가 전면 재협상에 나설 것을 명령한다”며 “명령을 끝내 거부한다면 이명박 정부 퇴진을 위한 국민 항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무릎을 꿇을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최후통첩이다. 무엇보다 취임 100일을 겨우 넘긴 시점에서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이 한심하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대책회의가 도대체 누구로부터 정부에 대해 명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물려받았는지 알고 싶다. 이 나라는 지금 무정부 사태로 흘러가고 있는가. 이런 식으로 사태를 방치하는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불러도 좋은가?

40일 넘게 이어진 촛불집회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은 더 커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권퇴진 등 극단적인 방법이 지금의 혼란을 푸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대통령을 바꿀 수 있다 하더라도 정부 퇴진과 헌정 중단이란 선택을 하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국민대책회의는 결국 이런 목표를 위해 쇠고기 시위를 끌고 왔는가. 지금 침묵하는 국민 다수가 이런 식의 투쟁에 동의할 거라고 보는가. 그럴 리 없다고 본다. 오죽하면 국민대책회의 내부에서조차 정권퇴진 투쟁 방침을 놓고 이견이 있었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오만도 문제였지만 국민대책회의의 오만도 도가 넘었다. 이제 조금만 더 밀면 정부가 붕괴되리라 믿는가. 그렇다면 그 뒤의 사태는 무엇인가. 혁명을 하자는 것인가? 6·10 집회를 고비로 새롭게 터져나오는 국민의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인터넷 토론장엔 ‘국민 의사를 보일 만큼 보였으니 대응을 지켜보자’ ‘촛불의 순수성을 회복하자’ ‘정권 타도나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국민과 끝을 보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끝을 봐주겠다”고 밝혔다. 누구를 위해 끝을 보겠다는가. 지금까지 순수한 자발적 시위였다는 주장은 결국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국민대책회의는 시위 참가자의 하나일 뿐이다. 정권퇴진 투쟁을 하더라도 그건 국민이 결정할 일이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를 한 것처럼 우리 국민은 위기 때마다 힘을 합치고 지혜를 발휘했다. 지금은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위기를 이용하여 나라 근간을 흔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