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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 <16> 용구혜자의 전남 조도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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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내에 있는 조도 군도는 어미 섬인 하조도를 중심으로 크고작은 섬 154개로 이루어져 있다. 유인도가 35개, 무인도가 119개다. 섬들은 몰려있는 위치에 따라 가사군도, 성남군도, 상조군도, 거차군도, 관매군도, 하조군도 등 조도 6개의 무리로 나뉜다.

조도면의 면 소재지인 하조도 어류포항에서 도리산 전망대(210m)까지는 약 10㎞. 북쪽의 상조도와 남쪽의 하조도를 연결하는 조도대교를 건너면 도리산 전망대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조도대교는 밑으로 큰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설계됐다. 곡선이 우아하고 멋스럽다. 특히 이곳의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워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도리산 전망대 아래에서 약수터를 하나 만난다. 약수터 옆의 작은 평지는 옛날에 해적들이 빼앗은 물품을 숨겨두었다고 전해 오는 곳. 조도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의 남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항로로 예부터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길목이었다. 조도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도리산 정상은 해적들이 활동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조도를 무대로 날뛴 해적은 왜구다. 그래서 일본인인 필자로서는 조도를 소개할 때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후지산 아래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시집온 지 어언 20여 년. 진도를 홍보하는 관광안내원으로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소개하거나 조도의 해적 이야기를 할 때면 한국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 앞선다.

조선시대 봉화 터인 도리산 정상에는 통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면 황홀한 ‘섬 속의 섬’들과 마주할 수 있다. 전망대 아래는 경사가 급한 원시림이 펼쳐진다. 새들의 고향이자 바닷바람의 길목이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천상의 연주회를 보는 듯하다. 조도(鳥島)는 바다에 내려앉은 새떼처럼 섬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혹 새가 많아 조도라 불리는 건 아닐까 할 만큼 새들이 많다.

도리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조도면의 섬은 관매도를 비롯해 모두 147개. 총 154개의 섬 중 큰 섬 뒤에 가려 볼 수 없는 7개의 작은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관매도 너머로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희미하게 보인다. 전망대 뒤편 한국통신 중계소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서쪽에 위치한 섬은 물론 멀리 신안 앞바다의 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조도의 아름다움은 한국보다 외국에 먼저 알려졌다. 19세기 초 한국 서해안을 항해하다 점점이 뿌려진 섬을 발견한 영국 함대는 상조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보석을 흩뿌린 듯 아름다운 섬들의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들은 자신이 지나쳤던 섬에 일일이 이름을 붙였다. 영국의 해도에는 지금도 하조도는 앰허스트 섬, 상조도는 몬트럴 섬, 외병도는 샴록 섬, 내병도는 지스틀 섬으로 기록돼 있다.

영국 함대의 함장이자 여행가였던 바실 홀은 영국으로 돌아간 이듬해인 1816년 『조선 서해안 및 류큐 제도 발견 항해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상조도에서 본 조도면의 전망을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했다. 이 책은 『10일간의 조선 항해기』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도리산 전망대는 한국 최고의 해돋이와 해넘이 명소다. 섬을 비집고 떠올라 섬 사이로 떨어지는 태양은 장엄하면서도 애잔하다. 해질 무렵이면 하늘이 갈라진 듯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쏟아진다. 바다는 황금색으로, 또 이내 붉은 색으로 물든다. 이어 섬과 섬 사이로 불덩이 하나가 장렬하게 산화하면 기다렸다는 듯 하조도 등대가 불을 밝힌다.

진도의 여인들은 삼별초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몽골군에,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그들의 피맺힌 한이 서려서일까? 진도 홍주보다 붉은 태양이 동백꽃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찡해진다. 나도 어느새 어쩔 수 없는 ‘진도의 여인’이 됐나 보다.



Tip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에서 2번→77번→18번 국도를 갈아 타고 팽목항(061-544-5353)까지 간다. 팽목항~하조도 어류포항 사이는 철부선이 하루 5회 왕복 운항한다. 약 30분 소요. 편도 요금은 승용차 1만4000원, 승객 3000원이다. 어류포항에서 상조도의 도리산 전망대까지는 자동차로 10분 거리.

조도에서 해넘이를 감상하면 진도로 나오는 배편이 끊기므로 하조도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어류포항의 산해장모텔(061-542-8889)은 하조도에서 가장 깨끗한 숙박시설. 숙박료는 작은방 3만원, 큰방이 6만원이다. 비수기와 성수기의 요금이 같다.

내년에 점등 100주년을 맞는 하조도 등대는 어류포항에서 4㎞ 떨어져 있다. 바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 비포장도로는 트레킹을 겸해 걸어도 좋다. 등대 위쪽에 위치한 운림정에 오르면 48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와 조도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조도분소(061-542-1330)는 관광객을 위한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화로 예약하면 자연환경안내원이 4륜구동차로 도리산 전망대와 하조도 등대를 구경시켜 준다.

조도는 해산물이 풍부한 섬인데도 음식점에서 생선회를 구경하기 힘들다. 아직 찾는 관광객이 적기 때문이다. 대신 흑돼지 삼겹살이 유명하다. 그 외 옛날에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돌미역과 무말랭이, 톳, 대파 등이 특산물로 꼽힌다. 진도군 문화관광과 061-540-3045.


■용구혜자씨는=1956년 일본 야마나시현 출생. 일본 이름 다키구치 게이코. 82년 한국으로 여행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92년 남편의 고향인 진도에 정착. 현재 진도군 관광안내원으로 활동하며 일본어 카페 ‘진도 이야기’(http://plaza.rakuten.co.jp/keiko54316)’를 운영하고 있다. 97년 용구혜자란 이름으로 한국으로 귀화했다.


공동 캠페인 : 중앙일보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관광공사 · Korea Spark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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