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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위해 18일째 단식중인 법륜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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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을 위해 단식한다면 좀 뜨악한 눈길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시선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나선 첫 남한 인사가 있다. 사단법인 ‘좋은 벗들’과 평화재단의 이사장 법륜 스님은 12일 현재 18일째 ‘북한 주민을 위해’ 단식 중이다. ‘좋은 벗’들은 주로 북한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운동을 펼치는 NGO다.

법륜 스님은 아랫 입술이 터진 모습이 좀 그렇다며 얼굴 사진을 찍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쓴 사진으로 대신한다.

소리 소문도 없이 한다. 북한 관련 한 세미나에서 ‘스님이 단식 16일째’란 짧은 소식을 듣고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그런 얘기가 없었다. 평화재단의 정안숙 사무총장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알리지도 않았는데…”라고 놀라는 표정이다.

인터뷰 신청을 하자 곧바로 연락이 왔다. ‘단식 18일째면 누워 있어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하는 물음표를 달고 좋은 벗들을 찾아가자 스님은 멀쩡한 표정으로 평화재단 5층 사무실로 나타났다. 놀라서 물었다.

-단식하신다는데 돌아 다녀도 됩니까.

“단식 해도 일과는 평소와 같습니다. 아침부터 사회 지도층 만나고, 행사 참석하고...”

-건강은 어떻습니까.

“체중이 평소보다 8㎏정도 빠졌습니다. 준비단계에서 2㎏, 본격 단식에서 6㎏빠졌습니다.”

-자주 단식하십니까.
“예전에 수행할 때 20~30일 기간 동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은 단식이 별 것 아니라는 투다. 그러나 힘이 없어 보인다. 목소리가 가늘고 목이 타는 듯하다.좋은 벗들의 다른 행사에서 사근사근하지만 힘 있던 목소리와는 다르다. 정성이 엿보인다. 안스러운 마음이 인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왜 단식합니까.

“굶는 사람을 위해 단식합니다."

그리고는 긴 설명이 이어졌다.

“굶는 북한 주민을 살리려고 당국과 사회 요로에 아무리 호소해도 안됩디다. 북의 주민은 굶어 죽고 사태는 악화되는데 종교인으로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고통을 함께 하자는 뜻입니다. 그게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배고픈 자의 고통’을 알아야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

바짝 마른 입술을 물로 축이는데 빨대를 빠는 입이 느슨하다.

“죽어가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남북이 얼마나 이 문제로 대치합니까. 학자들은 북한에 시장경제를 확대하려면 지원해선 안된다 하고, 누구는 북한의 기아정치를 지원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정보가 없는 사람은 ‘상황이 급박하지 않다’고 하며 ‘차제에 북한이 무릎을 꿇게 해야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민이 죽는 것은 모릅니다. 기적이 필요할 지경입니다. 간절히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단식을 합니다. 먹을 것 잘 것 다 해서는 일이 안됩니다. 화두를 타파할 때의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칼날 위에 선 사람 같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 목마른 자 물을 찾듯, 굶주린 자 간절히 밥을 찾듯 해야합니다.”

주문을 외듯 말들이 마른 입술을 통해 줄줄이 나왔다.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북한에 당장 20만t의 식량을 긴급 지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정부가 움직이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민간에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20만t입니까.

“북한 주민의 1일 곡물 소비량을 1만t으로 잡으면 6~7월의 춘궁기를 넘길 식량이 60만t 정도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 3분의 1이라도 제공해 죽이라도 끓여먹고 춘궁기를 면하라는 것입니다”

-남북 대치가 심한데 단식으로 되겠습니까.

“남한은 끌려 다니지 않겠다, 무릎을 꿇리겠다고 하고 북한은 죽었으면 죽었지 구걸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민간 단체는 관성 대로 하고 있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게 필요합니다.”

-북한이 아사 직전 상황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정보가 잘못돼 있는 겁니다. 지금 황해도의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아사자가 많아요. 그러나 탈북자들이 함북사람 중심이어서 황해도 상황은 잘 안들어 옵니다. 겨우 1%가 황해도 출신이거든요. 시장도 요새는 활성화되지 않아서 정보가 제대로 돌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1년전까지만 해도 장마당이 활성화돼 있어 거기서 정보를 얻었는데 작년 9월이후 완전히 통제돼서 정보를 얻기가 힘듭니다. 정보를 취급하는 기관도 대부분은 지원 반대층들입니다. 게다가 진보 진영에는 정보 수집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니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좋은 벗들은 군 단위 동 단위까지도 소식을 얻습니다. 북한 당국이 철저히 통제하고 시외전화를 못쓰게 해도 우린 3일 안으로 정보를 받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잘 알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정보를 다 믿습니까.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이 주는 정보들입니다. 모두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친구도 나를 돕습니다. 10여년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다 압니다. 정보를 절대로 돈 주고 사지도 않고 과장 축소도 절대 안합니다. 나는 종교인입니다.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

-그래도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1997년에도 논쟁이 많았습니다. 과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170만명의 북한 주민이 죽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죽는 자에게 누구도 책임을 안졌습니다.”

-단식이 벌써 17일 째인데 변화 조짐이 크게 없습니다. 해결이 쉽지 않아보입니다.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노력한다고 금방 해결되면 이런 게 필요 없지요. 그래도 굶어죽는 사람을 위해 애달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냥 놔두면 북한 체제에 충격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많이 사망할 수록 효과가 크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모두 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산 사람 중심의 추상적 생각입니다. 죽는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그러겠습니까. 서울 인구가 많으니 반쯤 죽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입니다. ”

-북한 체제 연장해주는 것 아닌가요.

“나는 남북 모두에 비난 받습니다. 남은 좋은 벗들을 친북 단체라 하고 북한은 우리를 스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꾸도 않습니다. ”

-외면하면 북한의 태도도 바뀌지 않겠습니까.

“북한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우린 북한 체제 붕괴를 바라지만 북은 그 정도의 희생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북한을 방문할 계획입니까.

“못들어갑니다. 그러나 내가 못들어가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래도 지금도 계속 식량을 한 두 트럭 단위로 보내줍니다.”

-상황이 맘에 들지 않겠습니다.

“죽는 사람을 살리는 게 문명사회의 도덕률입니다. 굶어 죽는 동포를 외면하는 국가라면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살려놓고 봐야 합니다.”

이쯤 되면 법륜 스님은 온 몸을 던져 단식하는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래서 안타까움을 곁들여 말했다.

-기왕이면 더 강하게 세상에 대해 말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요.

“요즘 세상은 너무 자기를 내세워서 분란이 많습니다. 거기에 혼란을 하나 더 덧붙이기 싫습니다”

-그러면 계속 아무도 모르는 단식을 하실 겁니까.

“3주간은 기도를 할 겁니다. 이 기간동안 변화가 없으면 좀 더 자극적으로 호소할 생각입니다. 남북 모두에게 말입니다.”

-언제까지 할 겁니까.

“정부가 준비되는 날까지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대화를 일상적인 문제로 돌렸다.

-진짜 물만 드십니까.

“물만 마시고 장 협착을 막기 위해 산약초 다린 물을 두 번 정도 마십니다”

기자에겐 오미자 꿀물이 나왔는데 단맛을 느끼기가 민망했다.

-단식 경험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지난해 6월에 30일 정도 단식했습니다. 옥수수 1000t 보내기 내부 모금을 위해서였습니다. 모두 2000t의 옥수수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입술이 터져서 보기가 흉하다는 이유였다.

-왜 다치셨습니까.

“3일전 일어나다 현기증으로 쓰러졌습니다. 아랫입술 살점이 다 떨어져 의사가 꿰매야한다는데 그러면 말을 할 수 없다기에 수술을 안 했습니다. 의사는 ‘나중에 입술이 튀어나와 모양이 흉하게 된다’고 했지만 중이 모양은 무슨…”

-부처는 극단적 고행을 금했습니다.

“일부러 몸을 괴롭히는 고행을 금한 것입니다. 불위를 걷기, 물 속에서 숨 오래 참기 같은 것들이지요. 단식은 아닙니다. 부처님도 49일 금식하셨습니다.“

재단은 인터뷰 직전 동화상을 보여줬다. 거기엔 ‘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주제가 담겨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것=옥수수 20kg.
북한 어린이의 1일 최소 필요량=옥수수 200g
그러므로
만원으로 북한 어린이 1백명이 하루를 더 살고
북한 주민 한 가족이 한달을 버틴다.

인터뷰 중간에 했던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엔 웰빙 바람이 거세지요. 그러면서도 바로 옆에서 동포가 굶어 죽는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요. 내 건강이 중요하면 타인의 삶도 중요하고 나누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내 삶만 생각해선 안됩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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