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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ESTATE] ‘기름 덜 먹는 집’으로 시선 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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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기름값과 건자재 가격 급등의 불똥이 주택시장에도 적지 않게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상승으로 교통비 부담이 커지면서 대중교통편이 집의 가치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철근·시멘트 등 건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미 분양시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분양이 쌓이는 데 건자재 값 상승으로 분양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어 분양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건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면 주택시장에 상당한 지각 변동이 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유가 급등으로 희비 엇갈리는 주택시장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아파트에 살던 이모(34)씨는 최근 살던 집을 임대 놓고 서울 송파구 삼전동 다세대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이씨는 “지금도 부담스러운데 앞으로 기름값이 더 오를 것 같아 직장 근처로 집을 옮겼다”고 말했다.

고유가로 이씨와 같은 주택 수요자들이 늘면서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서울 도심 주택 선호 현상이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연구위원은 “출퇴근에 드는 자동차 기름값 부담이 심각해짐에 따라 서울에 직장을 가진 주택 수요자들이 섣불리 수도권 외곽 주거지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에서도 지역별 차별화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하철이나 경전철 등 대중교통 여건에 따라 주택 선호도가 차이 나고 그에 따라 집값 움직임도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일본과 같이 지하철역에서 몇m 거리인가에 따라 집값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수도권 외곽에서 빠져 나온 주택 수요가 서울 도심권으로 몰리는 현상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마포구 신공덕동 한국공인 윤성희 사장은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얻겠다며 용인 등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으로 집을 옮기는 경우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매매시장뿐 아니라 전세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서울 역세권 전세시장에 수요가 더 집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에 따라 서울 역세권 주택시장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앞으로 선호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집도 적지 않다. 우선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인기가 떨어질 전망이다. 주상복합아파트는 통상 외관이 유리로 돼 있어 여름에는 냉방비가, 겨울에는 난방비가 일반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 냉·난방비는 기름값이 오르면 비싸지게 마련이다.

남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에 비해 냉·난방비가 많이 드는 서향 아파트의 선호도도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요즘 수도권 외곽에서 개발이 활발한 대규모 민간 개발 사업장의 주택도 점차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 사업장은 광역 교통망을 잘 갖추는 공공택지에 비해 대중교통 수단이 취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이용이 많은 펜션 등 전원 상품도 고유가 타격을 받을 것 같다.

분양시장에서는 신도시 등 수도권 외곽지역 물량이 유가 상승의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분양 중인 D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값이 싼 아파트를 찾아 내려 오던 수요가 최근 들어 크게 줄어 분양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동탄2신도시 등 대부분의 2기 신도시들이 서울에서 40㎞가량 떨어져 있어 서울 출퇴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건자재 값 상승 분양가 상승 불가피

건자재 가격 오름세에 따라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다음달부터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기본형 건축비가 4.5%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는 단품슬라이딩제 적용으로 철근 가격 인상분 등이 건축비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본형 건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철근·레미콘 가격 동향이 분양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건자재 값 급등에 따라 112㎡ 아파트 분양가가 660만원가량 오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자재 값이 계속 오르면 분양가 역시 연쇄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택 청약심리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분양시장이 대체로 가라앉았는데 분양가가 올라 가격 부담이 커져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민수 연구위원은 “고유가로 주택 구매자들의 실질소득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분양가까지 오를 전망이기 때문에 새 아파트 청약시장은 부진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예상했다.

특히 미분양이 크게 늘고 있는 지방 분양시장의 몸살이 더 심해질 것 같다. 지방에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도 분양가가 주변 시세 이상이어서 건자재 상승 여파가 크다. 메리츠증권 부동산연구소 강민석 수석연구원은 “서울이나 수도권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 시세보다 20%가량 낮기 때문에 건자재 가격 인상으로 분양가가 다소 높아진다고 해도 그나마 경쟁력이 있지만 지방은 주택 수요자들의 외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품질이 나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체들이 미분양을 걱정해 건자재 가격 상승분만큼 분양가를 올리지 않는 대신 품질 수준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건자재 가격뿐 아니라 최근의 물가 상승은 기존 주택시장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도 동반되면서 물가가 오르면 현금보다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주택 수요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집값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반면 경기가 안 좋은 가운데 물가만 오르면 구매력이 감소돼 주택 수요는 얼어붙을 것이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주택 경기가 좋으면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겠지만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전가가 어렵다”며 “전체적인 경제 상황과 주택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원가 상승은 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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