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 떼돈 벌었지만 ‘인플레 신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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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한 가게에서 고객이 신발을 살펴보고 있다. 자원부국 베네수엘라는 넘쳐나는 오일달러로 물가가 30%까지 치솟았다. [카라카스 AP=연합뉴스]

배럴당 140달러에 근접한 고유가 사태는 비산유국뿐 아니라 산유국들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 4위 산유국인 이란과 10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넘쳐나는 오일 달러로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서민층의 민생고가 더욱 깊어져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비산유국은 말할 것도 없다. 9일 프랑스·스페인 등에선 트럭운전사들이 치솟는 유가를 감당할 수 없다며 도로를 점거하고 국경을 봉쇄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산유국들 인플레 우려=베네수엘라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저성장의 늪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9일 AP가 보도했다. 막대한 석유 판매 대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우고 차베스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를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투자와 성장이 부진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의 물가상승률은 20%였지만 올해는 30%에 이른다. 오일 달러가 계속 유입되는 상황에서 도입된 식료품 가격 억제와 고정 환율제도는 오히려 수입품 가격 상승과 암시장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4.8%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8.8%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최근 4년 중 최저 수준이다. 정부의 간섭 우려 때문에 외국인 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중순까지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25.3%를 기록,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이란 중앙은행의 발표를 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인 16.6%에 비해서도 큰 폭으로 상승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란 현 정권이 고유가로 번 돈을 국내에 과도하게 투입하는 정책을 고집하면서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식료품과 부동산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빈곤층의 생활고가 심화돼 현 정권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다.

◇유럽 트럭운전사들 파업=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트럭 운전사들의 파업은 스페인·프랑스·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로 확산하고 있다. 9일 AFP에 따르면 스페인·프랑스·포르투갈 트럭운전사들은 월요일인 이날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고유가에 항의해 도로를 봉쇄했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 트럭 운전사들은 두 나라 국경지역에 모여 국경으로 넘어가는 물류를 차단했다. 이로 인해 스페인과 프랑스 두 나라에 걸쳐 정체된 차량의 길이가 20㎞나 됐다.

프랑스 남서부 도시 보르도 인근에는 트럭이 30㎞가량 꼬리를 물고 도로를 마비시켰다. 이들은 “트럭운전사=실업자” “우리 직업은 끝났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 트럭운전사들은 이번 주말 사라고사에서 열리는 국제 엑스포 행사의 개막도 방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포르투갈 트럭운전사들도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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