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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34. 대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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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빈털터리로 부산에 몰려 온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

영도다리는 피란민들의 슬픔을 안고 쓰다듬어 주는 상징물이 됐다. 산 중턱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은 영도다리를 내려다보며 정처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사람들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뭇잎이라도 타고 그 쪽으로 가봤으면 했다. 여기는 지구의 끝. 어디라도 좋다. 게딱지 같은 조선판을 벗어날 길은 없는가.

`애수(哀愁)`라고 했던가. `워털루 브리지`라고 했던가?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언 리의 애절한 사랑. 큰 히트를 했다.

평화 속에서 우리도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는 없는가.

어느 날 자본을 댄 최태천이 나를 불러 말했다. "장교 구락부(클럽), 계속 적자입니다. 나는 그만 손 떼겠습니다. 내가 댄 본전만 뽑아주시고 형님 걸로 운영하세요."

고마운 것 같으면서도 서운했다. 한참 동안 운영이 잘 됐다. 나도 잘하면 많은 돈을 만져보게 되는가. 어느 날 수영비행장의 조종사들이 왕창 몰려왔다. 야단스럽게 놀아봤다. 임근식(일본명 구로바야시)씨가 술 기운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광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인간의 `지랄병` 속에서 이런 형상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아쉬워 하는 걸음으로 댄스홀을 거의 빠져 나갔을 때다. 갑자기 "불이야!"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났다. 그러더니 홀 뒤쪽에서부터 붉은 불덩어리가 확 퍼지며 홀 안으로 번져오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피아노와 위스키 등을 꺼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웨이터들이 위스키.맥주 상자를 갖고 내려오는 사이, 나는 다른 웨이터 두명과 함께 애크로소닉 피아노를 끌어내렸다. 계단을 어떻게 내려왔을까. 기억이 없다. 댄서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그 맥주 박스 따! 하나씩 나눠줘!"

웨이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불은 꽃을 피우며 하늘로 치솟았다.

"빨리! 빨리!"

맥주를 받아든 댄서들은 나를 쳐다보고 울고 있다.

"이 지랄 같은 전쟁 속에서 우리가 여기 와서 오늘까지 살게 해준 저 홀! 지금 마지막 불꽃이다. 감사했다고 인사하자! 마셔!"

모두 징징 울면서 맥주를 마셨다.

"이제 형님 것으로 경영하세요"하던 홀은 하룻밤에 재가 됐다. 나는 마담을 걱정했다. 길은 열리지 않았다. 구평회가 나를 걱정했다. 내무차관 홍범희씨가 나를 불렀다.

"한선생이 무슨 댄스홀의 매니저요? 육민관에 가서 학교나 지켜 주시오!"

육민관?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생각해봤다. 아무 것도 없는 원주 흥업면의 시골. 거기에서 사람을 길러보겠다는 홍범희씨의 집념. 예과 시절이 생각났다. 아, 그때. 순수하게 우리가 인간을 걱정하던 시절! 돌아갈까나. 돌아갈까나.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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