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치적 성공 뒷받침한 건 시적 감수성과 마키아벨리적 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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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단기간에 정치적으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시적 감수성과 마키아벨리적 정치술수가 뒷받침됐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LA)의 옥시덴털대에 다닐 때 학생 문집에 시를 발표하는 문학 청년이었다. 하버드대 법대에서는 흑인 최초의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으로 글솜씨를 뽐냈다. 33세 때인 1995년 펴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과 2006년에 출판한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은 솔직한 표현과 유려한 문장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30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조지 매클라우드 영스타운주립대 부총장은 “오바마는 시적 감수성을 정치적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서 킹 목사 이후 이런 능력을 갖춘 정치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개신교 부흥회 같이 청중을 열광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오바마는 냉철한 정치인의 면모도 선보였다. 96년 그의 정치적 후견인인 앨리스 파머가 오바마에게 지역구(일리노이주 상원의원)를 물려준 뒤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나갔다 떨어진 후 지역구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자 오바마는 이를 비난했다. 파머는 출마를 포기하는 대신 오바마 지지를 철회했다. 이로 인해 오바마는 ‘시카고식 맨주먹 정치’의 결정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바마는 또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정한 대선 경선 날짜를 앞당겨 대의원을 박탈당한 플로리다·미시간주에서 경선을 다시 치르려고 하자 이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의 의도대로 대의원을 배분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의정활동을 위해 포커 게임을 배우고, 골프에 입문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전략과 감각도 뛰어났다.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뒤에는 전도 유망한 항소법원 서기를 마다하고 시카고 지역 사회활동에 뛰어들어 정치적 기반을 쌓았다. 지난해 1월에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상황에서도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바람을 간파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NYT는 “오바마는 유대교 율법학자와 같은 엄격함으로 정치적 흐름을 파악하고 라이벌 정치인의 장단점을 연구·분석한다”며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에도 정치적 후견인을 뒀다”고 밝혔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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