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날쌘돌이’이세돌 속기왕 2연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베이징에서 프로 입단 동기생끼리 치른 TV 속기 결승전. 이세돌 9단이 흉내 바둑을 두어 또 다른 화제를 불러모은 이 바둑은 중국식 계가 끝에 1/4집이란 극미의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이세돌은 올 들어 세 번째 국제대회 우승. [사이버오로 제공]

위태위태하고 곧 무너질 듯 가슴 졸이게 하면서도 기어이 이겨내는 이세돌 9단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손을 가리는 속기대회에서 또다시 우승컵을 차지했다. 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회 TV바둑 아시아선수권전 결승에서 입단 동기생인 조한승 9단을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한 것(270수 백 반집 승). 올 들어 삼성화재배(우승상금 2억원), LG배(우승상금 2억5000만원)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우승이다. 다시 말하면 2008년 들어 결승전이 치러진 세계대회 우승컵은 모조리 이세돌의 수중에 떨어졌다. 국내보다 국제 무대에 서면 더 강해지는 이세돌은 올해 춘란배에서 탈락했을 뿐 현재 응씨배와 후지쓰배도 8강에 올라 있어 지금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이창호 9단의 연간 상금 기록(2001년 10억1900만원)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TV아시아 우승상금은 250만 엔. 제한시간 없이 1분 초읽기 10회가 주어지는 초속기 대회다.

이세돌 9단은 중국의 셰허 7단을, 조한승 9단은 이창호 9단을 각각 꺾고 결승에 올랐다. 초속기인 만큼 난타전이 예상됐으나 초반 포석에서 이세돌 9단이 의외의 흉내바둑을 들고 나오면서 집바둑으로 흘러갔다. 흑을 쥔 조한승 9단이 빠른 발과 유연한 ‘아웃 복싱’으로 이세돌의 파괴력을 제어하고 실리에서 앞서나가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계산’에서도 이세돌은 밀리지 않았다. 두터움을 배경으로 조금씩 따라잡기 시작한 이세돌은 후반 흑이 약간의 느슨함을 보이는 사이 아슬아슬한 반집 차로 바둑을 뒤집은 것이다. 운도 이세돌 편이었다. 한국의 KBS, 중국의 CCTV, 일본의 NHK 등 3국의 국영방송이 공동 주최하는 이 대회는 이번에 중국에서 열리면서 중국룰을 적용했고, 그 바람에 덤이 통상의 6집반에서 7집반으로 바뀌었다. 이 한 집 차이가 결국 백의 반집 승(중국룰로는 1/4집 승)에 기여한 것이다.

포석에 약점을 보이면서도 전투, 계산, 수읽기 등 전방위적으로 탁월함을 보이고 있는 이세돌이 세계바둑의 ‘대마왕’으로 자리를 굳힐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불리한 바둑에서 놀라운 역전 능력을 보여주는 이세돌은 승부기질에서 역대 최강이란 평가를 받고 있어 세계바둑은 점차 이세돌이란 정점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 세계의 고수들이 ‘이창호 타도’에 몰입했던 것처럼 이젠 ‘이세돌 타도’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세돌은 현재 7관왕. 국내 3개(국수전·명인전·물가정보배)에 국제 4개(삼성화재배·LG배·도요타덴소배·TV아시아)를 갖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