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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 “성장보다 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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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치솟는 물가가 아시아의 성장 스토리를 위협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이 아시아 성장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에) 최대 위험요소”라고 말했다. 고유가와 원자재값 급등으로 촉발된 인플레는 세계 각국의 경제 운용 흐름을 바꾸고 있다. 고물가와 식량위기가 파업이나 폭동으로 이어지면서 ‘성장보다 물가’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곳곳서 ‘비명’=전문가들은 6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0%를 웃돌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쓰촨성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대규모로 정부 자금을 풀고 있어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간 싼 상품을 공급해 전 세계 물가를 안정시켜왔다. 그런 중국이 이젠 인플레이션 수출국이 된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태국·필리핀 등 8개 아시아 국가의 기준 금리는 물가상승률보다 낮다.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의미다. 골드먼삭스는 3일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증시에 대해 투자를 줄이라고 권유했다. 인플레 압력이 커졌다는 이유다.

베트남은 ‘살인적’ 인플레이션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달 베트남의 물가상승률은 25.2%였다. 지난해 말 12.26%의 두 배다. 응우옌 떤 중 베트남 총리는 “물가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떨어뜨리는 데는 2∼3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남미 지역도 문제다. IMF는 베네수엘라의 올 물가상승률이 최대 25%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우루과이와 칠레 역시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10% 안팎을 기록할 전망이다. IMF 관계자는 “중남미 지역 경제의 문제는 성장의 둔화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고물가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3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앞으로 5∼10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3.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95년 이후 최고다.

◇인플레이션 잡기 총력전=브라질 정부는 올 최대 200억 달러 규모로 설립될 국부펀드를 인플레이션 방어에 쓰기로 했다. 당초 해외에 투자할 예정이었지만 물가 부담이 커지자 방향을 튼 것이다. 칠레는 인플레이션의 주범인 유가를 잡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10억 달러 규모의 유가 안정 기금을 조성하고 국영 에너지회사가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 카드를 내놓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간 투자가 위축되고, 가뜩이나 불안한 주식시장도 급락할 수 있다. 베트남은 지난달 금리를 3.25%포인트 인상해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섰지만 물가 오름세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대신 증시는 더 급락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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