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우연의 일치가 아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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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크게 비교된다.역대 다른 대통령이 내리지 못한결단이라는 평가다.
金대통령은 이번 결정으로 문민정부의 장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 이제 법이 제정되면 국민들은 법정에서 진실이 바로 잡히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이번 결단은 두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일관성의 문제다.金대통령은 지금까지 특별법 제정을반대해 왔다.
그는 집권 첫해인 93년 5월14일「광주민주화 운동의 명예회복에 대한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듣고 있다.그러나 진상규명은 역사를 바로잡고 정당한 평가를 받자는데 있다.결코 암울했던 시 절의 치욕을다시 들춰내 갈등을 재연하거나 누구를 벌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金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얼마전까지 계속돼 왔다.지난해 2월 광주 순시 때도『5.18 문제는 명예회복.용서.화합이 큰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올해 1월 망월동 묘지 참배에 나섰을 때도 묘역의 성역화만 강조했다.
왜 무엇때문에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180도 바꿔 생각하게 됐는지 현재로선 분명한 설명이 없다.강삼재(姜三載) 민자당 사무총장 같은 사람은 『대통령은 83년 5월에 23일간의 단식을하는등 광주문제의 심각함을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취임초기에 결론을 내렸어야 했다.올해 내리더라도 5.18이나 8.15등 의미있는 날을 골라 할 수 있었다.
굳이 비자금 정국의 와중에서 결단을 내린 이유가 궁금하다.
또하나는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이다.이번 결정은 대통령의 단독 결단이다.야당은 특별법 제정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대학교수와사회단체들은 5.18기소를 계속 요구했다.
따라서 이번 결단이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갑자기 대통령이 결심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청와대등의 발표는대통령의「애국적 결단」만을 강조했다.
이렇게 되니 정략적 결단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93년 대구동을 보선에서 민자당이 패배한 날 금융실명제 실시가 전격 발표되고 대선자금 공개논란 속에 5.18특별법 제정이 발표된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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