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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승부와 사무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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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武士)다. 검신(劍神)으로도 불린다. 그는 62세까지 살면서 60여 차례의 결투를 했다. 첫 결투는 13세 때였다. 평생을 두고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그의 검법은 독특했다. 이전의 검법은 속도였다. 얼마나 칼을 빨리 휘두르냐다. 요체는 반사운동이다. 그러나 무사시의 검법은 달랐다. 속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방향을 중시했다. 상대가 움직이는 방향을 읽었다. 방향을 바꾸는 순간, 그는 공격했다. 빨리 칼을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느릿한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자면 거리가 중요했다. 상대가 휘두르는 칼의 끝과 자신의 거리다. 그는 한 치를 강조했다. 그것만 유지할 수 있으면 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쓸데없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적의 칼이 한 치 앞을 비껴갈 때를 기다린다. 그때 적을 파고든다. 그러기 위해 상대가 먼저 공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적을 항상 유인했다. 상대를 극도로 흥분시켰다. 자제력을 잃도록 하기 위해 약도 올렸다. 결투장에도 언제나 늦게 나타난 그였다.

그는 '오륜서'라는 책을 남겼다. 자신의 검법을 서술했다. 일본판 '손자병법' 같은 책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검법은 남아있지 않다. 무사시가 죽은 지 얼마 안 돼 명맥이 끊겼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의 검법이 지금 일본의 정통 검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사시의 검법은 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사시 시대의 또 다른 사무라이 효고노스케(1579~1650)가 그것을 간파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것은 민첩해서가 아니다. 뱀이 노려만 봐도 개구리는 꼼짝 못한다. 뱀의 기(氣) 때문이다. 뱀은 그저 개구리를 삼킬 뿐이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사시는 그런 뱀과 호랑이의 기(氣)가 있다."

무사시 검법의 요체는 기(氣)였다. 가르쳐 줄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었다. 무사시 검법이 없어진 이유다. 무사시와 겨룬 모든 검객은 기(氣)에 무너졌던 거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는 효고노스케는 달랐다. 무사시의 기(氣)와 싸우지 않았다. 무사시도 자신을 아는 그와 겨루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두 사람이 나고야의 한 골목에서 맞닥뜨렸다. 서로는 서로를 알아봤다. 그러자 서로는 옆 골목으로 몸을 피했다.

작금의 탄핵 정국은 무사시를 생각나게 한다. 적을 유인하는 게 지금의 누구와 닮았다. 적을 흥분시켰고 약도 올렸다. 자제력을 잃게 했고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보다 닮은 점은 방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탄핵 정국의 흐름을 읽었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무사시 검법의 기초다. 적의 칼이 스쳐갈 정도의 한 치 앞까지 접근하는 것이다. 그래야 승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사시를 이기는 방법은 없었단 말인가. 탄핵 정국 속의 또 다른 상대를 위한 질문이다. 적어도 칼로 무사시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에게 목숨을 내준 60여명의 사무라이들은 칼로 이기려 했기에 지고 말았다. 해답은 무사시를 피해간 효고노스케다. 어찌 보면 그는 시간에 기댄 것 같다. 훗날 무사시의 관직 입문을 막은 것도 그다. 기(氣)가 빠질 때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우리 야당도 시간에 의지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힘든 선거를 치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때를 기다리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연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