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연맹 정상회담 돌연 취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이라크 전쟁 이후 처음 열릴 예정이던 아랍연맹 정상회담이 29일 돌연 취소된 것은 1945년 아랍연맹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언제 다시 열릴지도 불투명하다. 회담이 늦어질수록 후유증은 커질 게 분명하다. 미국이 제시한 '중동 민주화 개혁 구상'에 맞서 아랍권의 입장을 조율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분열된 상처를 치유하고 단합을 모색해야 할 숙제도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도자 살해에 대한 대응 방법을 놓고 회원국 간 이견이 크다는 것이 회담 취소의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아랍국가들의 개혁의지 부족이 더 큰 원인이다. 왕정과 군사독재정권이 대부분인 아랍권에서 개혁은 자칫 정권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오만.바레인 등 7개국이 국가 정상이 아닌 각료급을 회담에 파견키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무산된 이번 회담이 역대 가장 성공한 아랍연맹 정상회담이라는 역설적 평가도 있다. 의미 없는 성명으로 실패를 덮어왔던 전례에 비해 처음으로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아랍권이 진지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