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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보다 여론 무시하는 정부에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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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가두시위가 새벽까지 계속된 1일 청와대로 향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강제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1일 밤에도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26번째다. 집회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이다. 지난달 31일 토요일 집회에는 최대 규모인 5만여 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새벽까지 거리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2일,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10대가 주류였다. 그들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다. 오모(14·인천·중2)양은 손수 만든 피켓을 가져왔다. 피켓의 내용은 이랬다. ‘저희는 15년밖에 못 살았어요’.

유명 댄스 가수의 팬클럽 회원인 오양에게 피켓과 노래 부르기, 함께 든 촛불은 낯설지 않았다.

◇10대 불만 야기한 MB 교육정책=10대에게는 누적된 불안과 불만이 있었다. 연초,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영어 몰입 교육을 설명하며 “미국에서는 오렌지가 아니라 ‘아린쥐’라고 발음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10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10대 중고생들은 아린쥐로 대표되는 ‘영어 몰입 교육’ 외에도 ‘0교시 허용’과 ‘우열반 편성 시도’ 등이 발표되자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성신여고 2학년 이모양은 “우리는 충분히 공부에 시달렸다. 영어 몰입 교육, 0교시 허용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소개될 때마다 숨이 막혔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10대들 사이에 내재해 있던 불만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10대들은 단체 급식의 당사자여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대들의 우상인 유명 연예인들이 촛불집회 참가를 지지하는 글을 미니홈피 등에 잇따라 올린 것도 10대들의 참여를 늘렸다.

정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10대들의 마음속에 감춰진 불만을 보지 못했다.

◇부모 세대로 확산=10대의 불안은 곧 부모의 불안이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정부가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촛불집회는 어른 세대로 확산됐다.

초등학생 딸을 둔 오경수(36)씨는 지난달 17일(토) 가족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왔다. 오씨는 “학교 급식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는데, 쇠고기는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안 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달 6일, 한나라당과 정부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 확대’를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정책을 내놓는 정부를 믿을 수 없어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오씨의 말은 ‘촛불 민심’을 대변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그 주말, 촛불집회는 도로로 번졌다. 경찰은 법대로,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연행했다. 대학생 천모(20)씨는 “이 대통령이 국민을 저버린 것에 비하면, 도로 점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누가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냈는가”라고 항변했다. 그는 “지난 4월 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다정한 모습을 보이며 외교 역량을 과시하더니, 밀실에서 쇠고기를 내주는 협상을 하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기업가 출신이라 믿었는데 …”=지난달 29일 ‘쇠고기 수입 정부 고시’가 발표됐다. MB에게 표를 던졌다던 시민들도 촛불집회로 나왔다. 가정주부 김수정(37·여·서울 당산동)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7)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섰다. “남편도 퇴근 후 온다”고 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기업가 출신이라 나라 살림도 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국민의 손으로 뽑힌 분이, 머슴이 되겠다는 분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이명박 정부 퇴진’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정부 퇴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민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려줄 필요가 있다”는 시민들이 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직장인 오모(32)씨는 “광우병이 무서워서 나온 게 아니라 여론을 무시하는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용산에 살고 있는 김모(38)씨는 오후 6시쯤 광장에 도착했다. 책상다리를 한 그의 품에 여섯 살배기 아들이 앉아 있었다. 김씨는 ‘협상 무효·고시 철회’라고 적힌 팻말을, 아들은 촛불이 켜진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김씨는 처음으로 집회에 나왔다. 그도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장관 인선 과정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내각’이라는 웃지 못할 유행어에 씁쓸했다. 그래도 서울시장 시절 업적을 보며, 한번 더 믿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을 보며 마지막 믿음을 접었다. 김씨는 “우리는 CEO의 종업원이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집회에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강인식·한은화·김진경 기자

▶[중앙NEWS6] 휴일에도 계속된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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