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작가 키우는 미술 등용문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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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미술연구회 회원들이 지난해 6월 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 ‘창립 30주년 고금미술 특별전’ 개막식을 한 뒤 자리를 함께 했다. [고금미술연구회 제공]

“고금미술연구회를 통해 데뷔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는 신진 미술작가들이 오래 전부터 하는 말이다. 신진 작가들은 그만큼 고금미술연구회의 작가 공모전을 통해 데뷔하기를 원한다. 이 공모전은 서울의 화랑가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지역 최고의 미술작가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모임은 미술 애호가들이 신진 작가의 미술 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1977년 9월 구성됐다. 민간인들이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다.

회원 45명의 면면은 쟁쟁하다. 회장인 검찰청 사무국장 출신의 김성수, 금복주 김동구 사장, 대백프라자 구정모 사장, 김영심·이순동 변호사, 아시아농기구 김신길 사장, 동일철강 오유인 사장, 대구안과 조영수 원장, 영남정형외과 정재명 원장, 치과의사 이재호 원장 등 내로라하는 인물이 대거 포진해 있다. 초창기 모임을 주도한 정원영 영남대병원장과 문양 변호사회장, 남용진 적십자병원장 등은 이미 고인이 됐다.

회원들은 대부분 작품 수집 활동에 열심이며, 일부는 아마추어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사랑만은 남못지 않다. 매월 23일 월례회 때는 작가와 미대 교수 등을 초청해 1시간씩 꼭 미술 강의를 듣는다. 30여 년간 이어진 강의 덕분에 미술에 대한 식견도 만만치 않다.

이 모임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고금미술 작가 공모전’이다. 올해는 4월에 공모한 결과 9명이 응모, 대구예술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정재용(35)씨를 공모작가로 선정했다.

출품 자격은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35세 미만 중 개인전을 열지 않은 서양화 구상계열 작가로 한정된다. 공모 작품을 회화·조각 등 여러 분야로 확대하지 않은 것은 구상계열 작품이 미술의 기초 등 실력을 가장 정확하고 쉽게 판단할 수 있어서다. 6명 정도의 심사위원은 모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선정 작가에게는 파격적인 지원을 한다. 금복문화재단과 TBC·고금미술회에서 총 1500만원 상당을 지원한다. 또 매년 12월 3일부터 대백프라자 갤러리에서 대형 전시회를 열어 준다. 전시회 때는 회원들이 몰려가 작품을 사 주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고금미술연구회 양봉조(56·거성GMS 대표) 총무는 “공모작가로 선정되면 연간 3000만원 상당을 지원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파격적 지원에 작가들은 수년씩 이 공모전에 도전하고, 많을 때는 20명이 넘는 작가가 응모한다.

지금까지 이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작가는 총 18명. 작품이 좋지 않아 97, 98년에는 선정된 작가가 없었다. 데뷔 작가 중 서울 등지서 활동하는 도성욱·윤병락 등은 그림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유명해졌다.

고금미술연구회 김성수(67) 회장은 “올해는 그동안 연구회 활동과 역대 선정 작가, 역대 심사위원의 작품을 수록한 기념 화집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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