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선물 … 쓰촨, 통곡의 어린이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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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 어린이날(6월 1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전. 어머니 쑨궈펀(孫國芬)은 청두(成都) 최대 병원인 화시(華西)병원 앞에서 11살 난 아들 장웨이(蔣偉)의 사진을 내보이며 묻는다. “혹시 이런 아이를 본 적이 없나요. 제발 좀 찾아주세요.” 그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린다. 벌써 20일째 이렇게 어머니는 자식을 찾고 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라 그렇게 사달라고 애원하던 운동화를 사 왔는데 이 놈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의 고향은 쓰촨(四川) 대지진의 진앙지인 원촨(汶川)이다. 지진으로 남편과 4살 난 딸아이를 잃었다. 그러나 한 이웃이 그에게 말했다. “장웨이가 지진이 나던 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소학교 건물을 피해 달아나는 것을 봤다”고. 그래서 그는 아들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에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가슴 아픈 사연은 끊이지 않는다. 평소 10살 난 아들 리하오(李昊)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고 늘 보던 어머니 순잉(順英)은 어린이날을 맞아 화시 병원 앞에서 아들에게 보낼 카드를 들고 나와 통곡을 했다. 지진 당일 학교에 간 아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20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다.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자식을 잃고 눈물의 어린이날을 맞은 부모가 1만 명이 넘는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하룻밤 새 고아가 된 4000여 명의 어린이도 눈물로 어린이날을 맞기는 마찬가지다. CC-TV 등 중국 언론은 어린이에게 희망과 웃음을 줘야 할 어린이날이 부모들의 통곡과 한숨, 그리고 어린이들의 눈물로 뒤덮였다고 전했다.

물론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활동도 적지 않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달 31일 직접 산시(陝西)성 한중(漢中)을 찾아 천막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위로했다. 후 주석은 “강한 조국을 만들기 위해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 여러분이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격려했다. 또 충칭(重慶) 제2실험 소학교에서는 1일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베이촨(北川)에서 가족을 잃은 41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슬픔을 이기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린이들은 이날 행사 후 충칭 시내 각 자원봉사 가정으로 가 하룻밤을 지새우며 가족 잃은 슬픔을 달랬다. 몐양(綿陽)시에서는 장애 어린이들이 그동안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에게 수화로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으며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노래를 불러 주위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많은 어린이의 소원도 이뤄졌다. 구출 과정에서 왼쪽 다리를 절단해 광저우(廣州)에서 치료 중인 10살 난 잉린(瑩琳·여)은 바비인형을 갖고 싶다고 해 엄마로부터 인형을 선물 받았다. 음악에 재능을 보인 5살 난 쩡징이(曾敬怡)도 엄마로부터 전자오르간을 선물 받고 기뻐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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