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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중풍] 외국의 경우는 도우미 덕에 혼자 살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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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시에 사는 중풍 환자 우르술라 할머니가 남편 슈톨트레거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앉아 다리 운동을 하고 있다. 우르술라 할머니는 매일 20분씩 특수 자건거를 타면서 재활 운동을 한다.

일본과 독일의 치매·뇌졸중(중풍) 환자는 가족의 사랑뿐 아니라 제도·시설 덕분에 든든하다. 환자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호센터가 곳곳에 있다. 간호사가 집으로 직접 찾아와 재활을 돕는 제도도 활성화돼 있다. 중풍으로 왼손이 마비되고 왼쪽 다리를 절어도 각종 복지 서비스로 씩씩하게 혼자 살아가는 70대 할머니, 뇌출혈로 쓰러져 몸의 오른쪽을 모두 못 쓰게 됐지만 평생 살아 온 집에서 재활 서비스를 받아가며 여유 있게 살아가는 독일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봤다.

◇“중풍 걸려도 혼자가 편해”=한석환(70·일본명 미나미 게이코) 할머니는 도쿄 가나메초의 소형 아파트에서 5년째 혼자 살고 있다. 경주에서 태어난 한 할머니는 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다.

한 할머니에게 중풍이 찾아온 것은 12년 전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안 돼 중풍으로 쓰러진 것이다. 할머니는 이후 의식을 찾았지만 왼손이 마비되고 왼쪽 다리를 절게 됐다. 3남 1녀를 둔 그는 7년간 딸과 함께 살다가 딸이 출가한 뒤부터 혼자 살고 있다.

“며느리가 집안일 다 해주면 운동이 안 되니 오히려 몸이 나빠지잖아. 눈치보는 것도 싫더라고.” 할머니는 아들 집에서 걸어서 6, 7분 거리에서 혼자 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할머니의 한국말은 어눌했지만 활기가 있었다.

“‘헬퍼’(도우미)가 매일 집에 와 요리도 해주고, 빨래도 널어주니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어.”

할머니가 ‘독립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각종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때 비용의 10%만 부담하는 ‘개호 보험’ 덕분이다. 그의 생활 시간표는 분 단위로 설정돼 있다. 시간표는 주간보호센터를 가기 위해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고려해 구청 소속 ‘케어 매니저’(복지 서비스 전반에 대한 상담자)가 확인해 만들어준 것이다. 월요일에는 오전 8시56분에 집에서 나와 집에는 오후 3시58분에 돌아오고, 화요일에는 8시50분에 나가 오후 2시57분에 귀가하는 식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일주일이 금세 지나간다. 센터에서는 치매나 중풍의 진행을 더디게 하기 위해 노인의 적극적인 활동을 유도한다. 할머니도 그 프로그램에 따라 다른 노인과 마작도 하고, 도예를 배워 그릇도 만든다.

집에 있을 때는 3명의 도우미가 번갈아 가며 방문한다. 아침·저녁 식사 요리는 물론이고 세탁과 청소 등을 해준다. 2주에 한 번은 의사가 와서 진찰도 해준다. 마비를 풀려는 재활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마사지도 받는다.

이처럼 잘 짜인 독립 생활에 드는 비용은 월 3만5000엔(약 35만원). 그리 큰 부담은 아니어서 아들에게 덜 미안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밤에 혼자 있을 때도 벨을 누르면 24시간 도우미가 출동하는 서비스를 받고 있어 걱정 없다”며 “주말이면 찾아오는 아들·며느리·손자·손녀도 떳떳하게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집에서 재활 서비스 받아”=독일 쾰른에 사는 우르술라(74) 할머니의 아침은 간호사인 잉게르보르크의 방문과 함께 시작된다. 지난달 24일 오전 8시. 잉게르보르크가 2층 집 현관문을 열쇠로 열면 할머니도 침대에서 일어날 채비를 한다.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할머니는 몸의 오른쪽을 잘 쓰지 못한다. 간호사는 침실로 올라가 할머니를 일으키고 함께 입을 옷을 고른다. 이날은 오랜만에 미장원으로 나들이하는 날이라 할머니도 설레는 눈치다.

할머니는 지난해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불편한 몸에 혈액암까지 겹친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자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몸의 마비 증상도 악화됐다. 그래도 요양원 대신 집을 택했다. 평생 살아온 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워만 있던 할머니는 간호사와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부축하면 외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같은 시간 1층에서는 남편 슈톨트레거(78) 할아버지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손놀림이 힘든 할머니의 식사를 돕는 것은 언제나 할아버지의 몫이다.

간호사 잉게르보르크는 “건강이 악화돼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두 분의 그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까지는 독일 정부가 1995년 도입한 간호보험(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이 큰 힘이 됐다. 매일 찾아와 한 시간씩 할머니의 이동을 돕고, 목욕을 시켜주며, 재활운동을 도와주는 방문간호 서비스에는 월 700유로(약 114만원)가 들지만 모두 보험에서 부담한다. 할머니를 보살피는 할아버지에게도 매달 280유로(약 46만원)가 지급된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지만 생활에 불편은 없다. 간호보험의 규정에 따라 할머니가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게 집을 무료로 개조했기 때문이다. 방마다 문턱을 없앴고, 거실에서 화장실·계단을 따라 2층 침실까지 전동 휠체어 레일이 연결돼 있다. 욕실에는 적은 힘으로도 할머니를 씻길 수 있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 할머니가 매일 20분씩 운동을 위해 사용하는 특수자전거도 보험에서 무료로 대여해 준 보조도구다. 할아버지는 “돌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평생 살아온 집에서 지낼 수 있으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이진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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