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란 기자와 도란도란] 뜨거운 태양광 관련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시장은 투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한 말이다. 비유법인 것 같지만 직설법이기도 하다. 주가가 급락하면 어김없이 투자 실패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이 등장하니 말이다. 1989∼90년 ‘깡통 계좌’의 시절. 당시 증권사 객장에선 칼부림까지 났단다. 한 펀드매니저는 증권사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은, 90년 그날의 아침을 기억한다. 객장 안으로 신문을 말아쥔 사람이 다가왔다. ‘설마’ 했는데 ‘역시’ 였다. 신문지 안에서는 서슬 퍼런 식칼이 나왔다. 그가 그 칼을 책상에 꽂으며 외쳤다. “내 돈 물어내든지, 여기서 피를 보든지”라고. 당시 신문을 들춰봐도 그렇다. 증권사 지점장을 폭행하고 지점 쓰레기통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전설 같은’ 기사가 ‘건조하게’ 인쇄돼 있다.

10년 후 시장은 다시 피를 원했다. 정보기술(IT) 거품 붕괴가 찾아왔다. 대박을 꿈꾸며 돈을 싸 들고 시장으로 몰려간 이들은 결국 빈손으로 시장에서 철수했다. 다들 필사적이었다. 지금은 투자자에게 사랑받는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부사장도 “(고층 건물에서) 당장 뛰어내려라”는 전화까지 받았단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로 번 ‘피 같은’ 돈을 시장에 헌혈했다.

올 초 시장은 다시 피 맛을 봤다. 지난해 10월 고점에 들어간 이들도 떨어지는 주가에 비슷한 느낌이었을 게다. 그래도 그간 시장이 성숙한 덕분인지 이번에는 타격이 작았다. 20년 전보다는 직접 투자가 줄었고, 미수 거래도 덜했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1500선으로 떨어져도 패닉은 없었다.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 사태는 당국의 기우로 그쳤다.

최근 증시에서는 대체에너지가 단연 화제다. 배럴당 130달러를 넘나드는 국제유가에 태양광·풍력·원자력 관련주들이 급등하고 있다. ‘태양광 사업을 추진한다’는 공시만 나오면 주가가 뜀박질한다. 너도나도 사업목적에 ‘태양광’을 추가하는 형국이다.

시장은 끊임없이 투자자의 희생을 요구한다. 지금 대체에너지 시장에는 쭉정이와 알맹이가 섞여 있다. 시장이 커 가는 과정에서 쭉정이 기업은 투자자의 피를 빤 뒤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엔 없다. ‘공시’가 아니라 ‘실적’이 나오는 기업을 고르는 거다. 그게 헌혈하지 않고도 투자하는 지름길이다. 앞서 시장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시절에도 원칙을 지키면서 리스크를 관리한 투자자는 헌혈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