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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도 마음 놓고 못 다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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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29면

샘표 간장으로 유명한 샘표식품이 2006년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 회사를 둘러싼 M&A 공방은 두 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우선 기업 규모다. 기업 사냥꾼의 적대적 M&A 대상은 주로 대기업이었는데 샘표식품은 자본금 44억원에 매출 1200억원대의 중견기업이다. M&A 주체도 이례적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투자증권의 사모펀드(PEF) 마르스1호가 주인공으로, 이 펀드는 우호적 투자에 주력하는 국내 PEF들과는 사뭇 다른 투자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샘표식품 창업 3세대 경영인인 박진선(사진) 사장은 불만을 토로했다.
 
친인척 간 분쟁이 불씨

M&A 위협 시달리는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박 사장은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금융기관의 사모펀드라면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실히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며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우리투자증권이 돈만 노리는 투자를 일삼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마르스1호는 2006년 샘표식품 지분을 처음 매입할 때부터 줄곧 M&A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적대적 M&A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펀드는 2006년 9월 박 사장 체제에 반대하는 박 사장 친인척의 지분을 인수해 주요 주주로 등장했다. <그래픽 참조>

마르스1호는 올 3월 샘표식품 정기 주주총회 때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4월 들어 샘표식품 주식의 공개매수에 나섰다. 4월 4일부터 23일까지 20%(89만 주) 지분을 주당 3만원에 사들여 전체 보유 지분을 50%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목표 물량의 10분의 1밖에 사들이지 못하는 바람에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마르스1호는 현재 31.98%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기는 했지만 박 사장 및 특수관계인(34.21%)과 백기사로 나선 풀무원(5%)의 연합세력에 밀리고 있다.

마르스1호 운용 담당자인 남동규 우리투자증권 팀장은 “현 샘표식품 경영진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실패한 만큼 우리가 추천한 인사가 이사진에 들어가 경영을 쇄신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펀드는 오로지 투자 수익을 노릴 뿐 회사의 장기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며 “마르스1호가 샘표식품의 경영권을 인수하면 웃돈을 받고 곧장 대기업에 넘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장 전략에서 극명한 의견차

마르스1호와 샘표식품은 각각 주주 가치 증대와 회사의 장기 성장동력을 앞세우고 있다. 마르스1호는 샘표식품이 추진하고 있는 해외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남 팀장은 “미국의 일식당은 일본 간장이 이미 장악했고 중국인은 우리와 다른 간장을 먹기 때문에 해외 사업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면 중국과 미국·러시아 시장 진출이 절실하다”며 “간장이 아닌 다른 발효 식품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마르스1호로 인해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마음 놓고 장기간 해외 출장도 다녀오지 못할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그는 1년 넘게 미국 지사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요주주인 마르스1호에 사외이사 한 석 정도는 내줘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마르스1호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는 식품회사 경영에 전혀 도움이 안 될 인물이어서 거부했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중견·중소기업의 오너 경영체제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조직력이 막강한 대기업과 달리 중견·중소기업은 오너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선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는 거의 없다. 설령 적대적 M&A에 성공해도 오너를 빼고 나면 회사가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마르스1호의 적대적 M&A 시도가 샘표식품에 득보다 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마르스1호의 존재는 샘표식품에 상당 기간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며 “이로 인해 샘표식품이 장기 성장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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