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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어디든 두 시간 내 출격…신속기동군 ‘허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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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2면

“오키나와는 ‘태평양의 요석(Keystone of The Pacific)’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1954년 1월 연두교서를 통해 한 말이다. 한국전쟁 직후였다. 미국이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장악하려면 반드시 오키나와를 차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22일 방문한 오키나와 평화기념당 2층 전시실. 아이젠하워의 발언은 동판(銅版)에 새겨져 걸려 있었다. 요석이라는 단어는 바둑에서 ‘상대편의 세력을 끊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돌’을 가리킨다. 동판을 자세히 뜯어보면서 ‘요석’이라는 말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키나와 섬에 큼지막한 성조기가 나부끼고 서쪽으로 인도네시아, 동쪽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으로 베이징·하얼빈이 표시돼 있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주일 미군의 재편 현장, 오키나와에 가다

오키나와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각별했다. 1952년 미국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군정을 끝냈지만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한 것은 그보다 20년 뒤였다. 일본 정부의 반환 요구와 현지 주민의 잇따른 반미 시위 끝에 마지못해 오키나와를 반환했다. 90년대 초 냉전은 끝났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한·미, 미·일 군사동맹의 주요한 초석이다. 예컨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출동할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 공군·해병대가 오키나와에 자리 잡고 있다. “오키나와 미군은 한·미 을지포커스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과 인도네시아 지진·쓰나미, 파키스탄 지진, 미얀마(버마) 사이클론과 같은 재난 구호에도 참여했다.” 주(駐)오키나와 미국 총영사관 카멜라 콘로이 정무·군사담당 영사의 말이다. 그는 오키나와의 전략적 가치를 “군사작전에서 시간은 돈이고, 재난 구호에서 시간은 생명”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그는 “오키나와 본 섬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1250㎞, 타이베이까지는 900㎞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투기가 발진해 한두 시간이면 도달할 거리다.

오키나와현(縣)에는 현재 37개 미군 기지가 있다. 넓이로는 236㎢(7100만 평)나 된다. 오키나와 전체 면적(2274㎢)의 10.4%다. 이곳에 미군 막사·비행장·항만·훈련장·창고·통신시설 등이 세워져 미군(2만2400명)·군속·가족 등 4만6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미군 기지 중 가장 주목받는 곳은 소도시나 마찬가지인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다. 기지 관계자는 “태평양 지역의 공군기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며 “장병(7000명)을 포함해 총 2만4300명이 기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이 4㎞의 활주로 두 개가 가데나의 핵심 시설이다. 기지 인근에는 탄약 저장소(2만5000㎡)까지 별도로 갖추었다. 군산·오산 기지를 합친 것의 두 배를 훨씬 넘는 면적에 F-15 전투기(54대)부터 수송기·헬기·공중급유기·공중조기경보기 등 온갖 종류의 군용기 120여 대가 위용을 드러냈다. 노후 기종인 F-15(2개 비행대대)는 최신예 중형 전투기인 F-35로 교체되고 있다고 한다. 기지 시찰 중 C-17 수송기와 여객기·전투기들이 사뿐히 이착륙하는 광경이 잇따랐다. 기지 관계자는 “가데나에서 한 해 쓰는 돈만 60억 달러(약 6조원), 총비행시간만 2만4000시간”이라며 “동아시아 어느 곳에서 상황이 터지든 가데나는 두 시간 안에 대비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장담했다.

가데나가 요즘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스텔스 기능을 자랑하는 F-22 전투기 비행대대가 배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당 2억 달러인 F-22는 F-16 전투기(대당 4000만~5000만 달러)와 싸워 백전백승할 만큼 첨단 전투력을 자랑한다. 미 공군은 지난해 초 버지니아주 랭리 공군기지에 있던 F-22 10여 대를 3개월간 오키나와에 파견한 바 있다.

가데나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기지에는 주일 미 해병대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오키나와 주둔 미군(2만3000명) 중 반을 넘는 1만3500명은 해병대 소속이다. 이곳은 주한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 역할을 겸한다.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출동할 해병 기동여단도 오키나와에 있다.

후텐마 기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B-29 전초기지였다. 2800m짜리 활주로에는 C-5 갤럭시 중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다. 기지 관계자는 “활주로가 짧아 헬기 이착륙 등 제한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지 근무 인원은 2000여 명(장병 330명 포함)이다. 하지만 기지 주변이 인구밀집 지역으로 바뀐 데다 50여 년 전 지은 시설들이 노후해 미군은 이 땅을 2014년까지 일본 정부에 반환하기로 했다. 2014년까지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해병대 병력 8000명이 괌으로 옮겨가고 후텐마 기지는 섬 북쪽 해안의 간척지로 옮긴다. 미군 고위 관계자는 “기지 반환 뒤 동아시아·태평양을 맡은 제3해병기동군(약 2만5000명)은 오키나와·괌·하와이에 분산 배치될 것”이라며 “전략적 기동력을 높이기 위한 부대 재편”이라고 설명했다.
오키나와 기지 재편이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해병대 관계자는 “부대 재배치로 시간·공간·거리가 바뀌지만 각종 훈련을 통해 적시적지(適時適地)에 병력과 전투장비를 보낼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답변했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는 연간 70여 차례의 군사훈련을 해왔다고 한다.

미군 기지에 대해 주민의 찬반 양론은 팽팽했다.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집중 배치돼 지역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소음 공해와 미군 범죄 때문이다. 지마 미쓰오(儀間光南) 우라소에(浦添)시 시장은 “미군 주둔에 찬성하나 기지 숫자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평균소득은 본토의 70% 수준에 불과하고 미군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효과는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앙정부가 각종 규제 완화, 관광지 개발 등 특단의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 주도층의 의견은 훨씬 비판적이었다. 메이요(名櫻)대 나카치 기요시(仲地淸) 교수는 “미군 기지 이전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20~30년 뒤 똑같은 문제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히가 게이코(比嘉京子) 류큐(琉球)방송 보도기획부장은 “오키나와는 역사상 일본·중국 사이에서 각축장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 때 20만 명이 희생당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며 “미군 기지가 많이 있으면 다른 나라의 공격 목표가 될 텐데 전쟁은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과연 오키나와 미군 기지가 한반도 평화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류큐대 가베 마사아키(我部政明) 교수(국제정치학)는 미국이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오키나와 기지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기지 재편 논리는 수십 년간 계속된 냉전 논리의 재판(再版)”이라고 규정한 뒤 “군사 분야에서 한·미·일 3각동맹을 더 이상 강화하지 말고 한·일이 평등한 토대 위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확고했다. 케빈 마허 주오키나와 총영사는 “북한의 위협과 대만 비상상황에 대비하려면 미·일 동맹과 주일미군 기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북한이 남침하면 가데나 기지에서 전투기들이 발진하고 일본 본토의 요코다(橫田) 주일미군사령부에서 병참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미·일 안보동맹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으나 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 이후 그런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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