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 컴퓨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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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9면

벼르고 벼르다가 컴퓨터를 바꿨다. 5년 넘게 쓰고 있던 컴퓨터는 일명 ‘호빵맥’이라고 불리는 예전 아이맥으로, 돔 같은 반구형의 몸체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 목이 달려 있고, 거기 모니터가 얼굴처럼 떠 있는 모습이다. 나는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 쓸 때부터 쭉 맥을 써 왔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요즘은 아이팟과 스티브 잡스의 인기 때문인지, 맥의 가격이 꽤 싸졌기 때문인지 맥을 쓴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에는 “그래픽도 하세요?” “그건 디자이너들이나 쓰는 거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맥 OS와 맥이라는 기계는 이상하게 사람을 끄는 구석이 있어서 한 번 접하고 나면 윈도 PC를 쳐다보지 않게 된다.

여기에는 소수자의 정서도 한몫하는 듯하다. 컴퓨터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도 맥 사용자끼리 만나면 몇 시간이고 컴퓨터(물론 맥) 이야기를 한다. 나도 벌써 이만큼이나 맥 이야기를 떠들지 않았나! 어쨌거나 내가 보기에는 맥 OS와 응용프로그램이 윈도보다 훨씬 쓰기 쉽고 직관적이다.

맥 사용자들은 맥에 대한 충성도가 강한 만큼 맥 자체의 변화에는 인색하다. 지금의 아이맥이 나왔을 때도 맥 동호회 사이트 게시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으로 들썩였다. 알루미늄에 유리를 씌운, 모니터와 본체가 하나로 된 몸체 아래 알루미늄 다리가 달린 게 아이맥의 모습인데, 예전의 흰 폴리카보네이트 몸체가 훨씬 ‘맥답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디자인의 공로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조너선 아이브가 이끄는 애플 디자인 팀이 어떤 사람들인가. 색색의 반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아이맥을 선보여 한때 온갖 제품 디자인이 그 아류로 들썩이게 만든 사람들 아닌가. 알루미늄과 유리는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디자인의 결정만은 아니다. 재생 가능한 소재를 최대한 사용하고자 하는 고마운 결정이다.

애플은 환경친화 기업의 점수에서 낮은 성적을 보인 뒤 ‘더 환경친화적인 애플(Greener Appl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폐컴퓨터 수거부터 디자인의 변화까지 실천하고 있다. 지금 남은 폴리카보네이트 제품인 보급형 노트북 맥북도 앞으로는 알루미늄 소재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안타깝게 알루미늄과 유리의 이 새 디자인은 예전 색색의 폴리카보네이트 같은 선풍은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보면 이 디자인이 훨씬 더 예쁜데.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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