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골프채 잡으면 외로움도 잊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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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이청룡(左).장태환(右) 선수와 이들의 골프 스승인 박장진(中) 프로골퍼. [광주=양광삼 기자]

올해 고교를 졸업한 장태환(19)군과 고교 3년생인 이청룡(18)군. 이들은 광주시내 사회복지시설인 신애원에서 살고 있는 프로골퍼 지망생이다. 부모 얼굴도 모른 채 영아시설에서 일곱살 때 신애원에 맡겨진 태환이,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마저 숨지자 열살 때 이곳에 온 청룡이는 친형제처럼 지낸다.

이런 두 사람은 지난 15일 전남 화순군 남광주CC에서 열린 '미국골프지도자연맹(USGTF)' 티칭프로 선발전에서 나란히 합격했다. 둘 다 18홀 합격 기준 타수인 77타를 기록했다. 이들이 골프채를 손에 쥔 기간은 7~8개월에 불과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두 청소년의 후원자(35)는 지난해 7월 신애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태환이가 방황하면서 가출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원자는 마음붙일 곳을 찾아주기 위해 태환이에게 골프채를 쥐여줬다. 그리고 신애원 김오현(76) 원장을 설득해 시설 한쪽에 30m 길이의 간이 골프연습장을 만들고 한달 뒤에는 청룡이도 끌어들였다.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스윙 연습을 하더군요. 오전에는 체력을 단련하고, 오후에는 쇼트게임과 퍼팅 연습에 몰두했어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연습합디다."

후원자는 평소 다니던 골프연습장 코치로 있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골퍼 박장진(34)씨에게 이들을 맡겼다. 하루 30박스(100개들이)씩 연습공을 치며 골프에 몰두하는 이들의 집념에 놀란 박프로는 자신의 골프 기술과 지식을 쏟아부었다. 물론 레슨비는 공짜였고 틈틈이 필드에도 데리고 나갔다.

태환이는 키(180㎝)가 커 유연성이 뛰어났고, 청룡이는 몸집은 작지만 승부 근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부터 두달 동안 뉴질랜드 골프 연수를 다녀오면서 이들의 실력은 확 늘었다. 연수비는 신애원을 후원하는 '신우회(회장 유봉현)'가 일일 호프집을 열어 마련했다. 프로야구 이종범 선수도 금일봉을 보탰다.

광주=구두훈 기자<dhkoo@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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