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직 총리들의 호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직 국무총리들이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탄핵 정국과 관련해 각계의 성숙한 대응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전직 총리들이 이처럼 한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누구나 탄핵에 대해 찬반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선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이견이 국론 분열로 이어져선 안 된다. 헌정질서를 위협해도 큰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전직 총리들의 충정어린 고언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들은 발표한 호소문을 통해 몇 가지 당부를 했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선 총선이 원활히 치러지도록 엄격한 법집행과 공공질서 확립을 주문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의 당사자들에겐 겸허한 자세로 국가안정을 도모하라고 말했다. 공직자들에겐 정치적 중립을, 정당과 시민단체들엔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국민에겐 감정적 행동을 삼가줄 것을 호소했다.

모두 교과서에나 나옴직한 원론적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현 국면에선 흘려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탄핵을 둘러싼 극단적 대립이 계속 방치될 경우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핵에 대한 찬반이나, 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수용해야 할 호소들이다.

우리 헌정사엔 굴곡이 많다. 그 결과 지도층이 상처투성이인 것이 현실이다. 존경할 만한 원로도 거의 없다. 그나마 전직 총리들은 나라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기여한 공로자들이다. 사회적 위치와 자연적 연령으로 더 이상 자리.권한을 노릴 입장들도 아니다. 이들의 나라 걱정을 자신의 유불리로 저울질하는 처사는 협량이 될 것이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가 있은 지 18일이 지났다. 격앙됐던 감정의 자리에 차분한 이성이 들어설 만한 때도 됐다. 촛불시위 등 더 이상의 집회도 이젠 불가능하다. 탄핵 논란의 과열 상태가 지속돼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전직 총리들의 호소가 공멸.상극에서 공존.상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정치권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