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방>드라마를 흥미로만 본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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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80년초 한 TV 역사드라마의 고증문제를 놓고 작가와 방송평론가가 열띤 공방을 벌인 일이 있었다.방송평론가가 중앙일보에 방송평을 쓰면서 방영중인 한 역사드라마의 잘못된 고증 10여군데를 지적하고 나선게 발단이었다.작가쪽에서 즉각 반론을 폈고,평론가쪽이 다시 되받는등 각기 서너차례씩의 공방을 주고 받았다.고증문제에 관한 잘 잘못 시비는 일단 접어두고 역사드라마의 자세에 관한 원론적 쟁점부분만 옮겨보자.
『어떤 정변(政變)을 기점으로 역사적 인물의 평가가 달라지는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작가) 『역사극의 작가는역사해석이나 사관(史觀)의 제시따위에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그런 일은 역사학자가 할 일이다.』(평론가) 『역사의식이나 역사해석에 필요한 사관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것이 바람직한데 역사극을 쓰는 사람에게 사관을 갖지 말라니 사관도 없이 어찌 역사극을 쓰는가.』(작가) 『역사극을 통해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게된 시청자가 올바른 역사관과 부닥쳤을 때의 혼란상을 상상해 보라.』(평론가) 『사실과 픽션의 배분,그리고 인물의 해석과 재구성은 모든 작가들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영역이다.』(작가) 문제된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전후한 시기였고,공방이 벌어진 것은 12.12와 5.18의 중간쯤 되는 시점이었다.이 논전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나고 말았지만 역사드라마 혹은 실록드라마와 관련해 많은 것을 생 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역사상의 사건과 인물을 새롭게 해석하고재구성하는 것이 작가의 몫임에는 틀림없지만 만약 드라마 속에서사실이 왜곡되거나 실제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 그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두 TV가 경쟁적으로 방영하고있는 『제4공화국』과 『코리아 게이트』는 어떨까.12.12를 전후한 파란과 격동의 현대정치사를 극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들 두편의 드라마가 사실에 얼마나 근접해가고 있으며 그 해석은 얼마나 올바르고 개개 인물의 평가는 얼마나 정확할까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아니 그보다 더욱 궁금한 것은 시청률이 50%에서70%를 오르내린다는 이들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들이 과연 어떤감회를 느낄까 하는 점이다.
12.12의 주역들이 민주화를 후퇴시키고 현대정치사에 오점을남겼다는 점에서 그 당사자들이나 그들에게 덕을 본 일부 계층을제외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있을게분명하다.과연 이들 두 드라마는 그같은 국민 정서를 반영이라도하듯 때론 악(惡)의 이미지를 부각시킬대로 부각시키면서,때론 몇몇 주역들을 희화화하기도 하면서 더욱 큰 공감을 얻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때마침 터져나온 노태우(盧泰愚)씨 비자금사건을 드라마의호재(好材)로 삼을 눈치니 앞으로 어떤 소재,어떤 방법을 동원할는지 예측조차 하지 못할 정도다.
서두의 논쟁에서 작가가 주장한 것처럼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생각하기조차 끔찍하지만만약 군사통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면 12.12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고,설혹 만들어 진다 해도 그주역들은 「훌륭한 군인」으로 미화될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극화하면서 시청률만 염두에 두어멋대로 픽션을 가미하거나 흥미위주로 치닫게될 때 발생한다.가령극적효과를 위해 사실여부를 확인도 않고 반란군과 진압군의 충돌을 마치 서부활극처럼 처리한 것따위가 좋은 예다.아무리 드라마라 하더라도 있었던 사실을 잘못 전달하게 되면 진실이 은폐될 수도,왜곡될 수도 있다.그런 점에서 역사극 특히 실록드라마는 무엇보다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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