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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강의 ‘의암 비밀’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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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승조 교수가 의암의 이동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주성 촉석루 앞 남강가의 의암(義岩).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때 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민·관·군이 순절한 뒤 의기 (義妓)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떨어져 함께 죽은 바위다.

윗부분이 가로 3.6m, 세로 3m크기인 이 바위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 마다 촉석루쪽 암반과 붙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며 신비감이 돌고 있다. 6.25전쟁때 촉석루쪽과 붙었다고 전해 온다. 그동안 의암의 이동설에 대해 소문만 무성했을뿐 아무도 과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지 않았다.

지질학자인 서승조(65·진주교대 과학교육과)교수가 최근 펴낸 ‘진주의 지질과 화석’(지식산업사, 134쪽)이라는 책에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제1장 진주의 지질 경관-‘의암은 정말 움직이는가’라는 항목에서 촉석루 암반층 지층면 방향은 동쪽이 기울어져 있는데 의암은 수평이라고 밝혔다. 바위의 밑부분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바위라는 설명이다. 의암은 모래층위에 얹혀 있어 강물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의암은 어디서 왔을까.

그는 “오래전에 남강 상류에서 굴러 오다가 유속이 느려지는 촉석루 앞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남강상류 어느 곳에서 굴러 온 바위인지는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의암과 같은 성질의 암반을 찾는 조사를 벌였으나 진양호 댐이 생겨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초등학교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지질학의 기초지식으로도 의암은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진주성 절벽에 대해서도 조사, 물결무늬 퇴적암을 찾아냈다. 그는 “이 일대가 1억년전 커다란 호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즉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고운모래가 물분자 운동의 영향으로 물결자국을 보존하고 있다가 물이 빠지면서 퇴적암으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책에서 진주8경의 하나인 뒤벼리와 망진산 절벽은 우리나라 주요지층의 하나인 ‘진주층’의 특성을 나타낸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주층은 사천시 서포면 앞 바다에서 경북 안동군 풍천면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두께 1㎞가 넘는 퇴적층이다. 지층의 이름을 지을때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곳의 지명을 따서 표식지(標式地)로 삼는다. 진주층의 표식지가 바로 뒤벼리로 수많은 지질학자들이 찾지만 진주시민들을 잘 모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주층은 건물 터파기만 하면 동식물 화석이 쏟아진다는 신고가 잇따르는 화석의 보고다.

그는 “지층은 수억 년 전 지구탄생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컴퓨터 칩’과 같다. 자녀들과 함께 가까운 절벽을 찾아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수억년전으로 돌아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펴낸 책은 남성문화재단의 후원으로 2000년부터 ‘진주문화를 찾아서’란 장기 시리즈로 출판중인 34권가운데 10권째다.

글·사진=김상진 기자

◇서승조 교수=198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룡을 주제로 논문을 써 박사학위를 받은 공룡전문가다. 2006년 봄에는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아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천연기념물 411호) 군립공원 해안에 널려 있는 공룡 발자국 화석 2000여 개의 원형복원 작업을 지휘했다. 고성군 내 10여 곳의 공룡 화석지를 조사해 ‘고성 공룡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고성 공룡박물관 명예관장을 맡아 수학여행 학생들이나 단체 관광객들의 요청이 있으면 직접 안내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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