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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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오랑이 준 「세초(細초)」도 단순한 비단이 아니라 제철법(製鐵法)을 소상히 적은 두루마리였을 것이다.사신이 신라로 돌아와 「연오랑이 말한대로 하고 제사도 지냈더니 해와 달의 광채가예전같이 됐다」는 것은 사신이 제철에 대해 배워 왔음을 의미한다.「기술이전」「기술의 U턴」이다.
고대의 야철장(冶鐵場)에선 화입(火入)하기 전에 반드시 제사를 지냈다.사신이 지냈다는 「제사」도 이 의식(儀式)을 가리킨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제사 지낸 데가 곧 야철장임을 알 수 있다. 이 야철장 일대의 들판을 「도기야(都祈野)」라 했다.「도기」란 달의 옛말이다.고대에 달은 「다라」 또는 「도기」「도구」라 했다.그러니까 「도기야」는 「달들판」이란 뜻의 고장 이름이다. 이 달을 가리키는 우리 옛말 「도기」「도구」가 고대의 일본에 가서 달을 가리키는 「쓰키(つき)」「쓰쿠(つく)」가 되었다.우리말의 「도」「두」「드」소리는 일본에선 대체로 「쓰(つ)」소리로 바뀌어버린다.
달의 일본말은 요즘도 「쓰키」지만 「쓰쿠」는 현재 일본 고어사전에만 남아있다.
일월지가 있는 제1해병사단 남쪽 담밖은 도구동(都邱洞)이다.
이 「도구」가 달을 가리킨 우리 옛말중의 하나인 「도구」다.이일대가 일찍이 「도기야」「도구야」였음을 일러주는 화석(化石)과도 같은 지명이다.
『해와 달의 광채를 되살리는 큰 제사를 왜 이 바닷가 마을에서 지냈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서여사의 설명에 아리영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일월지 둔덕에선 우줄우줄 치솟은 포항종합제철의 굴뚝들이 바라다보였다.해병사단 병영 길 하나 건너편이 「포철(浦鐵)」이다.
고대의 제철소 땅에 현대의 제철소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옛일을 알고 세운 것도 아닐텐데 희한한 일치가 아닌가 .
『역사는 되풀이됩니다.매사에 그래요.』 서여사는 혼잣말하듯 했다. 해병사단을 떠나 산소로 가는 차 안에서 아리영은 조심스레 추리했다.
『아달라왕이 새로 현(縣)을 두었다는 「감물(甘勿)」은 혹시이 오천(烏川) 일대가 아니었을까요?』 일월지가 있는 고을은 언제부터인가 오천이라 불려왔다.이 「오천」이란 지명이 「감물」이라는 고을 이름과 통한다는 것이다.
「검을 오(烏)」의 옛새김은 「감을 오」다.이 「감」은 「감(甘)」과 소리가 같다.「내 천(川)」은 「냇물」을 뜻한다.옛말로 물은 「믈」「몰」이라 했다.신라 계통의 말이다.이것을 「물(勿)」「몰(沒)」등의 한자를 빌려서 나타냈다.
그러니까 「감믈」은 「검은 물」「검은 내」란 뜻이다.한어(漢語)로는 바로 「오천(烏川)」이 아닌가….
『좋은 파트너를 두셨습니다.』 서여사 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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