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탄핵 방송'의 잘못된 변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탄핵 관련 방송의 편파성에 관한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탄핵방송으로 치명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야당은 방송사를 직접 방문해 불만과 불평을 토로했다. 여당과 해당 방송사들은 이를 야권의 언론탄압이라고 몰아붙였다. 일반 시민들의 탄핵방송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지지했던 시청자들은 탄핵방송이 여당 손만 들어줘 균형을 잃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에 울분을 느꼈던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면서 희망을 키우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방송위원회가 탄핵방송의 편파성 여부를 가려야 하는 시험을 치르고 있으나 답안지 제출을 미루고 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정 반대로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편으로의 치우침을 편파라고 본다면 탄핵방송은 편파적이었다. 탄핵관련 방송내용 전체를 놓고 분석해 본다면 열린우리당에 유리한 내용이 더욱 많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위원회는 탄핵방송을 산술적 균형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방송제작자들은 산술적 균형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와 '비민주'의 대결구도에서 '민주'의 편에 서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할 뿐 아니라 언론의 사명에도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70%의 국민이 탄핵반대 의견을 갖고 있으므로 방송이 탄핵반대 편에 선 것은 오히려 적절한 처사였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런 상황에서는 방송이 좀 편파적이어도 정당한 편에 서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이 탄핵정국을 '민주'와 '비민주'의 대결구도로 규정하는 방식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이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은 물론 30%의 국민에게도 '비민주' 세력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주는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어떻게 내리든지 간에 판결의 의미는 이 대립구도에 의해 해석될 것이다. 한 쪽을 편드는 방송의 정당성을 여론조사 결과에서 찾는 것은 더욱 위험한 발상이다. 방송을 통해 다수의 횡포를 더욱 증폭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라 보도시각을 결정했다면 지지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금까지의 방송보도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탄핵방송이 결과적으로 여당을 지지하는 시각을 유지했다고 하더라도 일부 보수신문이 노골적으로 야당을 편들고 있으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균형을 잃지 않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을 쓴 리영희 교수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연상시키는 발상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보수신문이 오른쪽 날갯짓을 하고 있으니, 이에 맞설 왼쪽 날개가 필요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공영방송에 왼쪽 날개가 되어줄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두 날개를 가진 새가 멋있게 날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그러나 멋진 비행을 준비하는 새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몸통이다. 날갯짓의 원동력은 건강하고 튼튼한 몸통의 근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몸통이 되어 중심에 선 공영방송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안심하고 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편 날개가 된 거대신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좌편에서도 신문과 인터넷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힘찬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좌우 날개의 불협화음으로 더욱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를 통합과 화합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매체가 바로 공영방송이다.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을 거치면서 공영방송이 좌우 날개를 모두 포용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줄 것으로 믿는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