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인사’까지 외국인 손에 맡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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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LG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 인사 업무까지도 외국인에게 맡겼다. 이 회사는 최고인사책임자(CHO, Chief Human resources Officer)로 영국 유니레버사에서 25년간 글로벌 인사관리를 맡아온 레지날드 불(50) 부사장을 영입했다고 23일 밝혔다.

국내 주요 기업이 인사책임자로 외국인을 발탁한 것은 처음이다. 불 부사장은 이르면 다음달 말 한국에 부임한다.

LG전자의 전명우 상무는 “전체 직원 8만2000여 명 중 해외 인력이 63%에 달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우수 인재 발굴과 성과지향형 인사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불 부사장을 스카우트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지난해 초부터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CHO 후보를 물색해 왔다. 최고경영자(CEO)인 남용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남 부회장은 CEO로 내정된 2006년 말부터 최고경영진의 대부분을 외국인으로 채우겠다는 구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의 85%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해외 법인·지사가 100개를 넘는 상황에서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승부수였던 셈이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이미 세 명의 외국인 경영책임자를 영입했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더모트 보든, 최고구매책임자(CPO) 토마스 린튼,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이다.

이번에 CHO로 불 부사장을 영입함에 따라 LG전자는 7명의 최고경영진 중 4명을 외국인으로 채우게 됐다.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외국인 인사책임자 영입에 대해 ‘한국 특유의 노사문화나 팀워크를 이해하지 못해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며 “그러나 조직 운용을 글로벌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남 부회장은 이달 초 외국인 경영진과의 ‘열린 대화’에서 “인력 개발, 성과 평가와 보상 등 인사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꾸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불 부사장은 LG전자의 국내외 직원 선발은 물론 교육·고과·배치·승진 등 인사의 전 과정을 책임지게 된다.

특히 세계 각국의 현지 책임자급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명우 상무는 “불 부사장이 그간 다져온 세계 유수 리크루팅 업체들과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글로벌 인재 유치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 문화가 바뀜에 따라 해외법인은 물론 한국 본사의 글로벌화 또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해부터 영어를 사내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사내 인트라넷을 영어 사용 환경으로 바꿈은 물론 공식 문서나 e-메일도 영어로 오간다. 한국 본사의 영문 표기도 영어 약칭인 ‘LGEKR(LG Electronics Korea)’로 바꿨다. 이전에는 해외 법인에만 영어 약칭을 썼다.

LG전자 측은 “본사가 어디 있느냐는 중요치 않으며, 한국 역시 회사의 글로벌 시장 중 한 곳일 뿐이라는 인식을 구성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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