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외선 전구 시장 '공룡기업' 에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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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 지난해 9월 프랑스 렌에서 열린 '스파스 축산 전시회'에 참가해 적외선 전구를 홍보하고 있는 박시흥 사장.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도전장을 낸 중소기업이 있다. 그것도 독자 브랜드를 내세워 선전하고 있다. 직원이 15명에 불과한 '인터히트'다.

이 회사는 필립스가 독점하다시피하는 '적외선 전구' 시장을 파고들었다. 아직은 3%의 시장점유율에 불과하지만 독자 수출 7년 만에 이룬 성과다.

적외선 전구는 물리치료받으러 병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열을 내는 기능성 전구다. 병원에서 이 전구를 사용하는 물량은 미미하고 가장 큰 시장은 양돈 축사용이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의 보온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새끼돼지는 한달 이상 섭씨 32도를 유지하는 실내에서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전구 업체로 출발한 인터히트가 적외선 전구를 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이 회사 박시흥 사장은 "양돈 농가들이 기존 전구에 대한 불만이 많은 점에 착안해 이 전구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2년간의 연구 끝에 수명도 기존 제품보다 세배나 길고 수명이 다했을 때 교체하기가 손 쉬운 적외선 전구를 만들었다. 문제는 시장 개척이었다.

박사장은 "품질만 놓고 볼 때는 뒤지지 않지만 아무도 안 알아줬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2년간 일본에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방식으로 납품을 하다가 97년부터 마음먹고 독자 브랜드를 내놔 수출길에 나섰다. 바이어들이 갈수록 수출 가격을 낮춰 달라고 요구해 원가 절감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품을 알릴 뾰쪽한 수단이 없었던 박사장은 직접 발로 뛰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해외 도매상들이 거들떠 보지 않아 1년에 열달 이상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축산 박람회 현장을 누볐다. 세계의 양돈 농가들이 박람회에 오기 때문이다. 발품을 판 덕분에 얻은 별명이 있다. 해외 바이어들이 붙여준 '미스터 에브리웨어(어디든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필립스의 안방이나 다름 없는 유럽시장에서도 인터히트의 제품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수출액은 170만 달러에 이른다. 독자 브랜드 '인터히트'로 유럽시장에서 올린 매출이 이의 절반이다.

박사장은 "품질에 자신 있으면 얼마든지 독자 브랜드로 승부할 수 있다"며 "기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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