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없는 연기로 관객 유혹-극단 한양레퍼토리 "러브레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가을,편지쓰기에 대한 기억.아름답고 혹은 부끄러웠던 날들에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을 안겨주는 한 편의 연극이 가을 저녁 서울 대학로를 찾은 젊은이들의 발길을 잡는다.극단 한양레퍼토리가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러브레터』(거니 작.신일수 연출).
『러브레터』에선 남.여 배우 2명이 객석을 향해 나란히 앉아「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만 읽는다.특별한 움직임도 없다.
동작이 없는 연극,그래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관객의 의구심은 끝내 허튼 우려로 남는다.오히려 한 자리에서 50년 인생을거쳐가는 인물을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력이 자연스럽게 도드라진다. 앤디와 멜리사.극의 두 주인공은 학교에서 쪽지를 주고받는것으로 편지쓰기를 시작한다.알파벳을 연습하던 시절에 주고받기 시작한 이들의 편지는 국교생의 그림일기처럼 앙증맞다.
사춘기시절 성(性)에 대한 그들의 고백은 솔직하고 대담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뭉치로 묶지 못할 각자의 삶을 갖는다.앤디는모범생으로 자라나 로스쿨.상원의원등 미국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를밟지만 화가로 성장한 멜리사는 이혼.알콜중독을 겪으며 아슬아슬한 인생을 자학적으로 살다 그녀의 말대로 끝내 「사라진다」.
이 연극에서 관객은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을 경험한다.테이블 하나,의자 두 개로 꾸며진 단조로운 무대와 동작이 없는 연기는관객들의 상상력을 통해 더없이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성된다.관객들이 앤디와 멜리사의 편지들을 훔쳐보며 편지쓰기 에 대한 은밀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재미도 있다.편지쓰기가 주는 환상과 그 폐해까지도….
그러나 번역극인만큼 우리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미국적인 내용들이 귀에 거슬리는 것이 흠이다.최형인(한양대).김광림(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등 네 그룹의 연기자들이 번갈아 출연하며 각기 다른 앤디와 멜리사를 선보이고 있다.
가을 저녁 30~50대 중년 부부가 나들이해 함께 볼 만한 작품이지만 연극 객석이 그렇듯 아직은 20대 연인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어 아쉽다.12월3일까지.745-074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