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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시민 '재판 참여' 길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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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22일 사법개혁위원회는 '국민의 사법 참여'를 주제로 배심.참심제의 도입방안에 대해 첫 공청회를 열었다. 참석한 법조계와 법학계 인사들은 그 실현형태에 대해서는 이견을 표명했으나, 시민의 재판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같이했다. 지난해 초 대법원도 시민의 재판참여 제도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밝힌 바 있다.

*** 사법부 역시 국민 통제 받아야

현재 우리나라에서 입법부는 시민의 투표에 의해 구성되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역시 시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만, 시민의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법부의 구성과 재판에 대해 시민은 완전히 배제돼 있다. 장기간 국가 우위의 권위주의 논리가 만연돼 있었던 결과, 우리 사회에는 재판에서 시민의 참여가 배제된 것이 정상적인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재판에 시민을 참여시키면 '법관의 독립'이 침해되지 않겠느냐, '연고'에 얽힌 시민들이 엄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거나 참여 시민에 대한 매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 법원의 사건 부담이 가중되지 않겠느냐 등의 우려가 있음도 사실이다. 미국 'O J 심슨 재판'을 통해 한심한 제도로만 알려진 시민의 재판참여 제도의 도입이 왜 계속 제기되고 있을까.

민주주의의 원리는 사법부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통제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 재판은 필연적으로 시민의 생명.자유.재산의 제한 또는 박탈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민은 자신의 대표가 법을 만들 것을 요구함은 물론, 단지 법률전문가의 의견만이 아니라 같은 시민의 의견이 반영된 재판을 받기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대학자 블랙스톤이 "배심제야말로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중 시민의 재판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사실판단은 시민이 내리고 직업법관은 양형을 전담하는 '배심제'를 취하고 있고, 대륙법 국가에서는 직업법관과 시민의 공동 작업으로 사실판단과 양형을 행하는 '참심제'를 취하고 있다. 최근 일본도 '재판원 제도'를 시행하기로 국가적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생각컨대 현 시기는 시민의 재판참여 부작용을 강조하기보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 세계 150개 이상의 나라에서 왜 시민의 재판참여를 보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시민의 재판참여는 재판과정의 투명성을 높여 법관과 검사의 권한남용을 견제할 수 있고, '전관 예우' 등의 관행이 봉쇄돼 재판 결과에 대한 시민적 신뢰가 높아져 재판의 정당성을 고양시킨다. 재판이 특정한 교육과 계층적 배경을 가진 직업법관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일반 시민의 법의식과 법감정이 판결에 반영되면, 참여 시민은 재판과정의 주체가 되어 주권의식이 높아지게 되며, 준법의식 역시 고양된다. 헌법 제27조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 뜻이 단지 '직업법관' 만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고 해석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 준법정신 훨씬 높일 수 있어

물론 모든 사건에 대해 시민의 재판참여를 당장 실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허사건.의료사건.행정사건 등 비법률 분야의 전문지식이 판결에 반드시 필요한 사건의 경우는 독일식 '명예법관'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 판사의 판결에 해당 분야 전문가의 지식이 반영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죄질이 중하고 다툼이 있는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신청이 있다면 시민참여를 시행해야 한다. 대신 죄질이 경미하고 자백이 있는 사건의 경우는 지금보다 신속하고 간이한 절차가 도입돼 재판의 부담을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재판을 위한 자원(資源)사용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시민참여형 재판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외국의 운영방식을 검토해 방지책을 마련하고, 일정 관할법원에 한해 시험적으로 운영하면서 단계별로 확대 시행하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의식 변화다. 재판참여는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권리'이므로.

조 국 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