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영 방송이라면 사회적 책임도 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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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MBC는 이제라도 국민을 혼란과 공포에 빠뜨린 과장 왜곡 보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4월 29일 MBC PD수첩이 방영한 ‘긴급 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가 문제다. 이를 시청한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한국인은 모두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게 될 거라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 20일 농식품부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정정·반론문을 게재하라고 직권결정한 내용이 이를 증명한다. PD수첩은 미국에서 주저앉는 소를 강제로 일으켜 세워 도축하는 장면을 보내고 곧이어 인간광우병 의심 증상으로 숨진 미국 여성의 사례를 14분이나 보도했다. 거기에 ‘한국인은 특정 유전자형 때문에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영국인의 3배, 미국인의 2배’라는 내용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진상은 전혀 다르다. 주저앉는 소는 미국 동물보호단체가 일어서지 못하는 소를 도축하기 위해 강제로 일으켜 세우는 것을 찍은 동물 학대 고발 내용이었다. 광우병 소라는 증거는 없다. 숨진 여성도 인간광우병이 아니었다는 미국 농무부의 중간발표가 나왔다. 돌이켜보면 동물 학대 영상과, 엉뚱한 병으로 죽은 여성을 연결 편집한 것뿐이다. 흑색선전이나 다름없는 이런 보도는 엄청난 여파를 몰고왔다. 온갖 괴담이 인터넷을 통해 불길처럼 번지고, 급기야 어린 학생들까지 ‘우리는 15살밖에 안 살았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불안 여론에 편승한 야당의 반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동의도 어려워졌다. 엄청난 국가적·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한 광우병 괴담 사태의 출발점이 바로 PD수첩 보도다. 언론중재위의 결정은 명백한 오보를 바로잡으라는 요구인데도 MBC 측은 ‘따르기 힘들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MBC가 스스로 주장하듯 공영 방송이라면 정정 보도는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다. 확률이 극히 낮은 광우병 발생 위험을 과대 포장해 국민을 불안에,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잘못을 저지르고 여기에 더해 오보를 시정하라는 언론중재위의 결정까지 무시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공영 방송 운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