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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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재계에 굵직굵직한 비리 사건이 이어져도 끝끝내 모습을 숨겨왔던 거액의 비자금이 드디어 실체를 속속 드러내고 있다.정치타락과 기업부실의 주범인 이런 비자금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기업체에서 조성되는 비자금은 따로 장부상에 올 라있지 않은부외(簿外)자금이다.
대부분 수많은 거래항목 속에 숨어있다고 봐야 한다.특히 기업의 대규모 자산이 이동되는 건설공사.해외장비구입.부동산등 대형자산거래등이 비자금 형성의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
이런 거래는 실질적으로 당사자들간에 오간 돈과 계약서상의 금액이 틀리게 마련이다.이른바 세무당국의 감시를 벗어난 2중거래일 수밖에 없다.
가령 A기업이 B기업으로부터 1,000억원짜리 땅을 산다고 하자.이때 A기업이 100억원의 비자금이 필요하다면 B기업에 계약서를 1,100억원에 꾸미자고 요구하고 자신도 장부에 같은금액을 올려놓는다.결국 돈은 1,000억원만 B 기업에 가고 100억원은 A기업의 비자금으로 남게 된다.반대로 비자금이 필요한 것이 B기업이라면 계약서를 900억원에 쓰자고 A기업에 요청한다.B기업은 1,000억원중 900억원은 장부에 올리고 100억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한다.
기업 입장에선 비자금 조성 흔적을 숨기는 것은 큰 문제다.큰거래일수록,그리고 비자금 규모가 클수록 흔적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다.납품가격이 900억원인 거래에서 비용만 900억원이 넘거나 거래액이 1,100억원인데 비용이 턱없이 낮다면 의심의대상이 되기 때문.
이를 숨기는데 동원되는 것이 하청업체들이다.실제 납품가를 깎거나 허위매출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또 유령업체들이나 명동의 「자료상(商)」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하청업체들은 다시 재하청업체들에 이를 전가하는등 이런 식으로 비자금 생성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비자금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건설업체다.우선 거래 규모(공사대금)가 크다.또 수많은 하도급의 꼬리를 갖고 있어 비자금 조성을 숨기기 쉽다.스스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고객의 비자금 조성도 돕는다.「건설공사 외형금액의 5~10%가비자금」「어지간한 공사에 목도장만 한가마니가 든다」는 말은 건설업계에 비자금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많음을 드러내는 것이다.해외구매는 국세청에서 양당사자를 조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자금생성의 또다른 원천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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