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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스킨십에 ‘두꺼비가 껑충’

중앙일보

입력

▶1957년 출생, 외국어대 일문과 졸업
1991~1994년 미국 시애틀 클로버 밸리 골프클럽 사장
2003~2006년 쌍용화재보험 사장
2007년 4월~현재 진로재팬 사장

이코노미스트 ‘두꺼비 소주’를 일본에 판매하는 진로재팬이 이달 일본 진출 20돌을 맞았다. 진로 소주는 1998년 한국 소비재로는 처음으로 일본 시장에서 주류부문 단일 브랜드 판매 1위에 올랐다.

이 회사 양인집(51) 사장은 “2, 3년 안에 일본의 소주 생산업체를 인수하거나 지분투자로 일본에서 생산·판매·수출까지 수직 계열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현재 진로 소주는 전량 한국에서 가져와 판매한다. 인수한 소주업체에서는 단일 곡물의 고급 소주를 만들어 일본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미국 등에도 진로 브랜드로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일본 소주업체 중 ‘물건’을 고르는 중이다.

진로재팬은 20주년을 맞아 쌀을 원료로 한 고급소주(25도)를 하반기부터 일본에 한정 판매한다. 양 사장은 지난해 4월 부임했다. 그는 외국어대 일어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금융기관의 홍콩·도쿄 지사에서 근무하다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시애틀에 있는 클로버 밸리 골프장 사장, 워싱턴 주정부 한국사무소 대표 등을 역임하고 2003년부터 4년간 쌍용화재보험 사장을 지냈다. 지난해 초 하이트-진로그룹에 합류, 곧바로 일본에 왔다.

TIP

일본 소주 시장 각종 곡물을 혼합해 만드는 갑류 소주와 보리·고구마·쌀 등 하나의 원료로만 소주를 만드는 을류 두 가지로 분류한다. 진로는 갑류 소주 80여 개 가운데 단일 브랜드로 2004년까지 1위를 7년간 했다. 이후 다카라 준, 두산경월 등의 추격으로 현재 2, 3위권을 달리고 있다. 연간 소주 시장 규모는 6조원이다.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최선을 다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의미에서 ‘Impossible=I’m possible’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다. 콤마 하나 차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신무장이 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골프장 사장을 하면서 골프 경기는 자신과의 싸움인데 여기서 승리하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진로재팬은 국내 대기업으로 유일하게 일본에 자체 판매망을 구축했다”며 “한국의 경쟁사가 일본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산토리 유통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과는 전략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자체 유통망을 보유하고 직접 딜러를 관리해야 적정 마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진로재팬은 일본 법인 설립 이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최근 수년간 소주시장이 감소하는 데다 일본 대형 맥주회사의 소주 시장 참여로 다소 매출이 줄었지만 지난해에도 13억 엔(약 13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역대 최고기록은 2001년 매출 272억 엔(약 2720억원), 영업이익 47억 엔(470억원)이었다.

참이슬 ‘키핑’까지 해가며 마셔

진로 소주는 대중 술집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급 술집(클럽)에서도 인기다. 고급스러운 초록색 병에 담긴 700ml 참이슬을 얼음이나 물에 타 마신다. 남은 술은 고객의 이름을 붙여 보관(키핑)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자 유통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높은 수익성 때문에 진로 매각 과정에서 진로재팬은 알짜 회사로 알려져 아사히맥주 등이 컨소시엄 구성을 제의하는 등 탐을 내기도 했다.

진로재팬이 최근 2, 3년간 매출 성장에 제동이 걸렸던 것은 적기 투자를 하지 못해서다. 2004년 법원관리 경영상황에서 비용을 무조건 줄이는 소극적인 경영을 펼쳐 경쟁사에 비해 신제품 출시와 광고 등 마케팅에서 열세를 보였다.

양 사장은 이런 점을 간파하고 우선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직원들의 기를 살렸다. 실적에 따른 처우를 확실히 하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선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

전 직원에게 생일카드를 직접 써 보내는 감성경영도 그의 독특한 경영수단이다. 미래가 있는 회사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교육예산을 만들어 장기적인 교육 투자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현장 경영에 나섰다. 일본 전역의 6개 지사, 1개 지점을 거점으로 매주 딜러 사장을 만나고 있다. 올 초 일본 동북 지방을 방문했을 때 한 딜러 사장은 “진로 역사 20년 가운데 사장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며 “이제는 진로를 믿고 거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술이라는 업종 특성상 직원과 딜러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애로사항을 들으며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효과가, 스킨십 경영 1년이 되면서 나타나고 있다. 직원들의 눈초리에서 ‘하면 된다’는 강한 전투 의욕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진로재팬의 침체는 적기 투자를 하지 못해 변화하는 시장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올해는 바닥을 확인하고 올라서는 턴 어라운드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재팬 마케팅 노하우

“유통망 장악 후 입맛 정복 나섰죠”

올 상반기 일본 내 소주업체는 80여 개에 달하며 브랜드만 300여 개가 넘는다. ‘소주 전쟁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 시장에서 진로의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를 통한 ‘품질·유통·마케팅’이라는 3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다. 2007년 기준으로 일본 소매점의 진로 소주 취급률은 90%에 달한다.

진로는 1979년 재일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당시 두꺼비로 유명했던 진로 소주를 공급하면서 일본에 진출했다. 알코올 도수나 술맛은 한국에서 파는 것 그대로 가져왔다.

교포사회의 인기를 바탕으로 진로는 독자 유통망을 준비한다. 86년 도쿄사무소를 개설하면서 교민 위주에서 벗어나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소주 개발에 나섰고 88년 진로재팬을 설립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일본의 유통구조를 뚫고 진로 소주가 소비자에게 어필하기까지는 끊임없는 현지화와 고급화 전략이 밑바탕이 됐다.

이 같은 전략은 바로 양인집 사장이 강조하는 성공 노하우고 진로재팬의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경쟁사가 산토리 유통망에 100% 의존하면서 수출물량만 공급하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어 시작한 프로젝트는 ‘일본인의 입맛 잡기’였다. 진로재팬 직원들이 총동원돼 술집을 순례한 끝에 일본인은 자극적인 맛을 싫어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진로는 곧바로 당도를 낮춘 일본 수출용 소주를 별도로 개발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진로는 ‘소주의 고급화’에 초점을 맞추고 고가 전략도 병행했다. 당시 음식점에서 2만원대에 팔리던 일본 소주와 달리 50% 더 비싼 3만원대(700ml 기준)에 팔면서 ‘진로는 좋은 술’이라는 이미지 상승에 성공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98년 일본 소주 시장 1위에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10년 공을 들인 독자 유통망을 2000년 구축, 직판체제에 돌입했다.

진로재팬은 일본인들이 ‘진로(JINRO)’ 브랜드에 식상해질 무렵인 2003년 깔끔한 뒷맛을 강조한 일본판 ‘참이슬(Chamisul)’ 브랜드를 내놓았다. 이어 가정용 시장 공략을 위해 2.7ℓ, 4.0ℓ 대형 포장 제품을 발매했다.

일본 진출 20주년을 기념하면서 세운 중장기 전략은 세 가지라는 게 양 사장의 얘기다. ‘브랜드 강화, 현지 생산, 해외 진출’ 이 바로 그것.

지금까지 제품 브랜드 강화를 위해 TV광고에 의존한 데서 벗어나 스포츠 마케팅을 도입했다. 올해 2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구장인 도쿄돔 외야석에 진로 광고판을 설치했다.

4월부터는 일본에서 가장 야구팬이 많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 전용 상품인 ‘진로(JINRO)자이언츠’ ‘진로(JINRO)타이거스’ 소주를 내놨다. 또 3월부터 1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는 여자 골프선수 전미정·이지희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

일본 소주생산 업체 인수를 통한 일본 현지 생산도 미래 핵심사업의 하나다. 양 사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다. 고급 소주 시장 진출을 위해 일본 현지 업체 인수는 필수다. 현재까지는 전량 한국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지만 생산시설을 보유할 경우 유통·판매에 이르기까지 100% 현지화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해외 진출도 병행한다. 양 사장은 일본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진로재팬이 생산한 다양한 술을 한국을 비롯해 중국·북미 시장에 수출하려는 포부를 감추지 않는다.

도쿄〓김태진 중앙일보 기자·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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