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파리 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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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6일 파리에서 한 「사건」이 있었다.프랑스의 세계적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가 고별 패션쇼를 연 것이다.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웨딩 드레스를 선보인 지방시는 은퇴 이유를 『내 나이 벌써 68세』라고 짧게 말했다.
전후(戰後) 파리 패션의 제왕(帝王)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였다.정치학을 전공한 외교관 지망생이었던 디오르는 30년대 공황(恐慌)시절 잡지에 패션 삽화를 그린 것이 인연이 돼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47년 디오르는 자신의 최초 컬렉션에서 「뉴 룩」을 선보여 패션혁명을 일으켰다.작은 어깨,가는 허리,풍성하고 긴 치마가 특징인 뉴 룩은 넓은 어깨,짧은 치마가 주류(主流)였던 종래 패션과 판이하게 달랐다.2차대전중 군대식 실용주의 패션에 염증을 느끼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원했던 파리 여성들의 소망을 디오르는 정확히 읽은 것이다.
50년대 파리 패션은 디오르의 독무대였다.H라인.A라인.Y라인 등 해마다 새로운 모드를 선보인 디오르 패션은 그의 명성을드높였을 뿐만 아니라 파리 오트 쿠튀르(고급패션)를 세계 패션의 정상에 올려놓는 데 공헌했다.
디오르가 파리 패션의 고급화에 기여했다면 지방시는 오트 쿠튀르의 문턱을 낮추는데 기여했다.60년대초 지방시는 오트 쿠튀르디자이너로선 최초로 기성복을 도입,세계 여성들이 파리 패션을 보다 싼 값에 사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지방시의 매력은 단순함과 우아함에 있다.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한 지방시는 고대 그리스 건축의 단순한 선(線)을 디자인의모범으로 삼았다.지방시 스타일은 높은 품위와 우아함으로 평가받았다.속이 비치거나 야한 옷은 만들지 않았다.영 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프린세스 드레스는 지방시가디자인한 것이다.소매와 허리띠 없이 가슴에서부터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오도록 만든 이 옷은 지방시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다.
지금 패션의 본고장 파리는 위협받고 있다.밀라노.런던.뉴욕.
도쿄(東京)가 자리를 넘보고 있다.파리 자체에서도 외국인 디자이너들이 판치고 있다.지방시의 은퇴는 쇠락(衰落)기미를 보이기시작한 파리 패션의 오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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