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미국의 대북 지원, 투명한 분배 선례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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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이 그제 50만t의 대북(對北) 식량 지원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다음달부터 12개월간 세계식량계획(WFP)과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각각 40만t과 10만t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도적 차원의 미 정부 결정을 환영하면서 이번 조치가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선례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 정부는 “WFP와 NGO 직원들이 굶주린 주민에게 폭넓은 지리적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지원 식량의 분배를 효과적으로 모니터할 수 있는 틀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감시요원의 배치를 거부하고, 모니터링 실시 계획을 6~10일 전 미리 통보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임의 모니터링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감시요원 규모를 종전의 50명에서 65명으로 늘리면서 한국어를 할 줄 알더라도 한국계가 아니면 감시요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임의 모니터링도 받아들였다. 또 감시요원들이 식량 저장 창고에 접근하는 것도 허용했다. 그만큼 식량난이 절박하다는 뜻도 되지만 북핵 협상 진전으로 고조되고 있는 대미(對美) 관계개선 가능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번에 지원키로 한 식량은 북한 주민의 1년치 최소 필요량 520만t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또 64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유치원, 탁아소 아동이나 산모, 노인 등 이른바 취약 계층의 반년치 기본 식량에 해당한다. 군량미 등으로 전용되지 않고, 필요한 주민에게 제대로 분배되기만 한다면 기근 사태 해소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식량이 북한에 실제 도착하기 시작하는 것은 일러도 7월께로 보인다. 당장 5~6월 춘궁기를 넘기는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북한은 비상용으로 비축해 둔 군량미가 있다면 이것부터 풀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아울러 한국 정부도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인도적 차원의 긴급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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