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 시대의 먹거리를 걱정하는 책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호 12면

독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의 첫 장면을 보자. 홀로 농장을 가꾸며 사는 여자 엠마가 기르던 돼지를 먹기 위해 도살하는 모습은 놀랍다. “사랑하는 돼지, 내 어린 동생,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널 사랑했단다. 참 많이 사랑했어. 거 봐, 아프지 않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잖아.

안녕, 내 돼지. 잘 가.” 엠마는 돼지의 정확한 급소를 순식간에 찌르고 돼지는 엠마의 키스를 받으며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한갓 인간의 먹거리인 돼지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고 애정을 기울이다가 세심한 배려 속에 도살하는 일, 꼭 그래야 할까. 그리고 우리의 다른 먹거리들도 이렇게 마련돼야 할까.

2000년대 초, SBS의 다큐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책으로 만들어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100권에 이르는 동명의 시리즈 도서까지 만들어져 히트하는 등 출판계에 이른바 웰빙 바람이 거세게 분다. 핵심 문제는 ‘먹거리’였다. 어쩐지 너무 나간다 싶었던 현대 먹거리 문화의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는 거대 식품 산업의 어두운 면을 분야별로 조목조목 취재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어 출판계 후폭풍을 만들었다.『패스트푸드의 제국』(에코리브르),『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국일)같이 패스트푸드와 과자의 유해성을 고발한 책, 식품회사의 필수 동반자인 설탕·식품첨가물·트랜스지방의 유해성에 대한 폭로가『슈거 블루스』(북라인),『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국일),『내 아이를 해치는 맛있는 유혹 트랜스 지방』(국일) 등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그 결과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고 웰빙 식생활 관련 서적들은 출판계에 굵직한 트렌드를 형성하게 된다.요즘 조류독감·광우병 우려와 함께 출판계는 다시 한번 우리네 식탁에 주목하고 있다. 『죽음의 향연』(사이언스북스)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고려원) 등 1~2년 전에 나왔던 관련 서적들이 일제히 서점 앞 매대로 진출했다.

최근 출간된 『죽음의 밥상』(산책자),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같은 책은 오랜 취재를 통해 먹거리 문화 전반을 근본적인 데서부터 파고든다.
이 시대 먹거리의 문제는 정책 결정자들과 식품 기업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소비자로서 우리는 수시로 시장과 식당에 들러 깔끔하게 포장된 가공식품·반조리제품을 사거나 푸짐하고 익숙한 맛을 내는 음식을 사먹는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불결하고 비윤리적이며 잔혹하고 위험한 생산 과정과 유통 과정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지는 되도록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의 철학자와 농부가 함께 쓴 『죽음의 밥상』(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은 우리의 건강과 양심을 위협하는, 갈 데까지 간 밥상을 뒤엎고 새로 시작하라고 선동한다.

특히 책 속에 상세하게 묘사된 식육 산업의 전모는 끔찍하다. 대의명분은 알고 있지만 실천은 힘들었던 독자에게 효과적인 충격 요법이 된다. 대안은 분명하다. 환경을 해치거나 다른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 생산된 재료를 가지고 만들며 가능한 한 짧은 유통을 거친 음식을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우리는 다시 그 불편하고 맛없던 먹거리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현재의 기술 문명과 라이프 스타일을 우아하게 즐기면서도 좋고 깨끗한 음식을 먹는 방법은 없을까.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는 ‘안전하고 올바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에 ‘아름다운 먹거리’라는 개념도 덧붙일 것을 주문한다.

그는 『슬로 푸드, 맛있는 혁명』(이후)에서 “생태적 감수성이 없는 미식가는 바보지만, 미식가적 감수성이 없는 생태주의자는 자기가 원하는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쌍한 사람”이라고 썼다.

그리고 세계 각지 시골 마을의 오래된 맛집 주인, 유기농 장터에서 만난 상인들,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문헌의 이야기를 버무려 단지 먹을 것에 탐닉하는 자들, 맛있는 것에만 빠져 사회 환경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로 생각돼 왔던 미식가를 건강한 생산에 개입하고 깨끗한 먹거리 유통에 앞장서는 선각자의 이미지로 바꿔 놓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