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박근혜 러브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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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대표 출마 레이스를 ‘함께 뛰자’고 제안했다. 정 최고위원은 최근 한 뉴스방송과의 대담에서 “박 전 대표가 7월 전당대회의 성공을 위해 출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체급의 두 정치 거물이 맞붙게 되면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박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정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의 출마를 종용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활용도'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내에선 박 전 대표를 상대로 대표직 경쟁을 할 수 있는 후보가 정 최고위원 밖에 없다는 분위기였는데 박 전 대표가 불출마를 시사하는 바람에 '굳이 정몽준 카드를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당은 박 전 대표의 전대 출마를 예상하고 경선 구도를 짜왔다. 정 최고위원은 6선이라는 정치적 위치와 대중적 인기로 ‘박근혜 대항마’로 손꼽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정 최고위원의 지지도는 다른 후보보다 월등히 앞섰다. 정 최고위원은 이에 부응하듯 4ㆍ9 총선에서 ‘텃밭’을 울산에서 서울로 옮기는 '거사'를 감행했고 대선 주자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물리쳤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친박 탈당자의 일괄복당을 주장하면서 당대표 불출마를 시사하자 당내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당대표직의 무주공산에 김형오, 안상수, 홍준표 의원 등이 뛰어들었다. 또 각료 및 청와대 수석들의 ‘강부자’ 비판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주요 현안을 둘러싼 당ㆍ정ㆍ청간에 잇단 불협화음이 나오자 당내에선 차기 대권주자형인 정 최고위원보다 관리형인 박희태 의원으로 무게중심이 쏠렸다. 김형오 의원과 홍준표 의원은 각각 국회의장과 원내대표로 당내 교통정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최고위원이 드러내놓고 박 의원을 견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 최고위원이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 박 의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 당 대표 경선이 대의원 표 70%, 여론조사 30%이기 때문에 박 의원과 경쟁하게 되면 당내 기반이 취약한 정 의원에게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된다.

최근에는 ‘안상수 당대표 낙점설’이 불거져 더욱 힘에 부치게 됐다. 박희태 의원과 안상수 의원이 ‘투톱’으로 경쟁하게 되면 정 최고위원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진다. 일각에서 떠돌고 있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 안 의원을 밀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더욱 그렇다.

정 최고의원은 차라리 박 전 대표를 링으로 끌어내 다시 ‘정몽준 빅카드’를 살려야 하는 입장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출마를 결심한다면 다시 정 최고위원이 각광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인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최고위원의 지지도가 가장 높게 나오기 때문에 굳이 박 전 대표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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