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 대통령, 사냥 중 거지 불러 고기 나눠먹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박 전 대통령이 충남 유성의 민둥산에서 꿩 사냥을 하는 모습. 멀리서 뒤따라오는 동네 어린이들이 보인다.

쿠데타 성공 후인 1961년 7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을 찬채 해병대사령부를 방문, 김 사령관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上>.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병1여단이 실시한 은성작전을 참관하면서 담배를 문 채 김성은 해병대사령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下>.

1964년 1월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박종규 경호실장, 김성은 국방장관, 이원엽(육사 5기) 육군소장을 대동하고 충남 유성에서 꿩 사냥을 했다. 점심시간이 돼 박 대통령 일행은 경호실에서 준비한 쇠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사냥터 인근의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소금을 뿌린 쇠고기 구이를 먹고 있던 중 거지 몇 명이 제지하는 경호요원들을 뿌리치고 다가왔다. 박 대통령은 경호요원들에게 “오라고 해라. 함께 먹자”며 거지들을 불러 음식을 나눠 먹었다. “우리를 보고 거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거지가 지프 타고 다니는 거 봤나”라며 파안대소를 했다.

김성은 전 국방장관의 회고록(880쪽)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에 나오는 일화다. 회고록은 화보집과 함께 15일 출간됐다. 지난해 5월 83세로 작고한 김 전 장관은 63년부터 5년간 최장수 국방장관을 지냈다.

회고록에는 5·16 군사 쿠데타의 비화도 담겨 있다. 당시 해병대 사령관(중장)이었던 김 전 장관은 61년 5월 16일 오전 6시쯤 고길훈 부사령관의 전화를 받았다. 고 부사령관은 전화에서 “김포 해병여단 일부 병력이 탱크를 타고 한강을 건너 서울로 진입했습니다”고 보고했다. 김포의 해병 여단장 김윤근 준장이 사령관의 허락도 없이 1개 대대 병력과 전차 중대를 이끌고 서울로 진입한 것이다.

해병대 병력이 쿠데타에 참가한 것을 뒤늦게 전해들은 맥그루더 유엔군 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의 승인 없이 김포 해병대가 출동해 혁명에 가담했다. 이는 작전지휘권에 대한 명백한 불복종 행위다. 지금 당장 포항의 해병대를 출동시켜 (쿠데타에 참여한) 해병대 병력을 복귀시키라.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지시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해병대끼리 피를 흘릴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맥그루더는 윤보선 대통령에게도 반란군 진압을 위한 작전권 승인을 요청했으나 윤 대통령은 거절했다고 한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말이 나온 일화도 회고록에 소개돼 있다. 6·25 전쟁 당시 해병대의 통영 상륙작전 전과를 취재하러 온 외신기자들 중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가 “정말 놀랍다. 귀신 잡는 해병이다”고 보도한 게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회고록을 집필한 전기작가 박태엽씨는 “2001년 이후 지난해 3월까지 6년간 김 전 장관에게서 구술받은 내용”이라고 전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